경상남도/창녕군

창녕...만년교 남천석교비

임병기(선과) 2019. 1. 22.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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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만년교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있는 홍예교로, 주변에는 영산 석빙고, 구계리 석불좌상, 법화암 다층청석탑. 보림사지부도, 삼층석탑, 신씨고가, 관음사 석탑, 미륵불 등이 지근에 있다. 오늘은 얼마전 페친이 포스팅한 비석군의 불상대좌, 신씨고가의 노두석을 뵙기 위해 들렸다.

 

 

보물 제564호. 만년교는 1780년 축조한 홍예교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만년교, 남산(南山)인 함박산(咸朴山)에서 흘러내리는 계류에 놓인 다리라고 하여 남천교(南川橋), 다리를 놓은 원님의 공덕을 기리고자 원다리로 불리운다고 전한다.

 

 

남천석교비(南川石橋碑)

() . (1780, 4) 3 () () () . () .

 

 南川石橋序幷銘」
輿樑所以爲萬民利涉而徃也亦王政之一事則秦之河橋晋之浮橋是已」
今邑之南有溪抱村而流爲邑基之水口而大路臨其上 詔使貢獻」
之經過是以構木而橋者奧自古矣而水溢橋圮每有病涉之患」
矣一日邑之人相與謀曰圖久存壓流走莫如伐石而橋邑居金允寬」
承侯命鳩財於民斵他山之石而築斯橋也數月而功告訖自是民無」
未濟之憂邑有壓鎭之理而石不老於千秋矣請余文將書諸石余以不文」
辭不獲已遂爲銘曰橋何以石圖久適石何以斲象以虹不可轉也知其功」

남천 석교서(南川石橋序) - 병명비(幷銘碑)

여량(輿樑)은 만백성이 편리하게 건너다니는 곳이며, 또 왕정(王政)의 한 가지 일로 진(秦) 나라의 하교(河橋)와 진(晋) 나라의 부교(浮橋)가 이것이다.지금 고을의 남쪽에 시내가 있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 읍기(邑基)의 수구(水口)가 되는데, 대로(大路)가 그 위에 있어 조서(詔書)를 받든 사신(使臣)에게 바칠 공물(貢物)이 그곳을 지나간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나무를 얽어 다리를 만들었으나 물이 넘쳐 다리가 무너져 매번 물을 건너는데 애로가 있었다.

 

하루는 고을의 백성들이 서로 더불어 도모하기를, “다리를 오래 보존하고 물의 흐름을 제압할 방법으로는 돌을 깎아서 다리를 만드는 방법보다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고을에 사는 김윤관(金允寬)이 현감(縣監)의 명을 받들어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모으고 다른 산의 돌을 깎아서 이 다리를 축조(築造)하여 몇 개월 만에 그 일이 완성되었다. 이로부터 백성들로서는 물을 건너지 못할 근심이 없어지게 되었고 고을에서는 물을 진압할 방법이 있게 되었으며, 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쇠하지 않는다.


비석에 새기려고 나한테 비문을 청하였는데, 내가 문장에 능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였으나 뿌리치지 못하여 마침내 명문(銘文)을 지었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다리를 어찌하여 돌로 만들었는가?
오래도록 보존할 방법으로는 돌이 알맞기 때문이지.
무엇 때문에 무지개 모양으로 깎았는가?
옮길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니, 그 공을 알 것이다.

 

 

大施主幼學南朋溟」
金陽居嘉善宣漢平」
業武權以善」
戶長李百新」
吏房張智城」
都監折衝金泰俊」
業武金必淳」
業武金允寬」
嘉善金大俊」
冶匠趙福才」
石手白進己」
乾隆四十五年庚子三月日」

 

대시주(大施主) 유학(幼學) 남붕명(南朋溟)
금양현(金陽縣)에 사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선한평(宣漢平)
업무(業武) 권이선(權以善)
호장(戶長) 이백신(李百新)
이방(吏房) 장지성(張智城)
도감(都監) 절충(折衝) 김태준(金泰俊)
업무 김필순(金必淳)
업무 김윤관(金允寬)
가선 김대준(金大俊)
야장(冶匠) 조복재(趙福才)
석수(石手) 백진기(白進己)

건륭(乾隆) 45년 경자년(정조 4, 1780년) 3월 일에 세우다.

 

 

영산 만년교비(靈山 萬年橋碑)
조선 정조 4년(1780)에 석공 백진기가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 4월에 영산현감 신관조(申觀朝)가 석수 김내경(金乃敬)을 시켜 다시 놓았으며, 이러한 사실을 남기기 위해 1892년에 세운 만년교비이며, 13세의 소년이 글씨를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萬年橋(만년교)

(...)歲書

( )안의 박락된 부분이 十三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13세 소년이 썻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가문의 13세손이 썼다는 의미는 아닐까?

 

 

 

2019.01.13

(남천석교 명문과 해석은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에소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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