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보성군

보성...대원사 자진원오국사 부도. 송광사 16국사 부도

임병기(선과) 2018. 11. 2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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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답사기

 

벚꽃과 연꽃이 곱다는 대원사 이야기를 두어번 들었음에도, 익히 알려진 문화유산 답사에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핑계로 남도 순례마다 동선에서 제외하였던 대원사를 이번 답사에 포함시키게 된 계기는, 일전에 KBS 프로에서 보았던 죽은 태아의 영혼을 상징하는 빨강 모자를 쓴 동자승을 뵙고 싶어서였다.

아침부터 나선 길이라 피로가 엄습한 탓인지 벚나무 길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외모와는 달리 겁 많은 상감은  운전하는 사람의 몸상태가 앵꼬난 것은 관심 없고,기름이 앵꼬나는 것만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두놈의 화상을 끌어 내릴 수도 없고, 에혀 내가 맺은 인연인데 우짜겠노?

주차장도 무시하고 마차에 채찍을 가했더니
아뿔싸! 염불소리 낭랑하게 울리는 극락전 앞마당이다.
이런 불경이 있나 싶었지만 세상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내 동생, 내 자식의 천도를 위해 찾아왔다고 용서를 구하는 빨간 모자 동자승 앞에는 "아버지의 씨앗은 백보리,어머니의 씨앗은 단전의 백보리다,빨강머리 동자승은 어머니로부터 버림 받은 낙태아의 영혼이 지장보살을 어머니로하여 업을 풀고, 새로운 환생을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여러명의 빨강머리 동자승 뒤에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아의 영혼을 고통과 원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의 어머니인 태안지장보살이 나를 굽어보시고 서 계신다.

태안 지장보살이 서있는 자리는 지금은 없어진 지장전이 있었던 곳이며, 풍수로 보면 여성의 자궁에 해당된다고 한다.
동자상도 결국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보면 대원사는 가람 전체가 지장도량이 아닐까?
그러면 절집 가득한 연꽃도 연화화생을 상징한 것이겠고...

그래도 부모를 대신해 태아의 천도를 봉행하는 목적이 궁금하여 대원사 홈에 들어 가보았더니...

◇ 부모의 무거운 죄업을 참회하여 안정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하고
◇ 전생과 금생의 나쁜 인연을 없애어 삶의 괴로움과 거침새에서 벗어나고
◇ 원결 맺힌 영가들을 해탈시켜 가저오가 사회의 평화를 기원하고자 합니다. 

나의 연화화생의 상징성과는 무관하게 대원사는 연꽃 천지다.
蓮池보다는 인위적인 수조가 절마당에 가득하여 대원사 홈에서 내력을 알아본다.

연꽃은 우리 몸 안의 에너지쎈타(챠크라)를 나타내는 성스러운 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백련을 ‘라지브’라고 하는데 그 뜻은 ‘신神을 낳는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의 생태는 사람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첫째, 종자불실種子不失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연꽃의 씨앗은 500년, 1000년, 30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보존되다가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튼다.

삼세인과의 법칙을 생각하게 한다.

둘째,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꽃은 물의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양분으로 삼고 산소를 내뿜어 물을 정화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염된 세상을 맑히고 향기로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는 뜻이다.   
  
셋째, 화과동시花果同時
꽃이 지면 열매가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힌다.

그것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웃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워서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일이 바로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연꽃은 말하고 있다.

어둠이 내린 시각인데, 예불도, 제도 아닌데 극락전에서 들리는 염불소리는 왜일까?
멀리서 찾아 온 내 동생,내자식의 천도를 올리는 중인가?

두려움에, 경외심에 극락전 참배를 못하고 자신이 없는 힘없는 발길을 옮기니 자진국사의 부도가 보인다.

다른 부도와 달리 탑신이 늘씬하여 가분수로만 보이는데 상감은 달리 이해하더라.
형식에 얶매인 내눈엔 중기단이 사라져 야릇한데, 한편으로는 상,하기단이 대칭으로 여겨지니 균제의 아름다움인가?

금빛 찬란한 범종각을 피하여 내려오는 차창으로 운주사의 등을 맞댄 모습의 불상이 보여 유현에게 알아보고 오랬더니 불평없이 다녀와서 설을 푼다.

"하리티라는 야차의 이야기를 새겨놓았다.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사는 이 야차는 자기의 아이가 500명이란다.
그래서 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부처님께서 한 명의 아이를 슬쩍 감추자 하리티는 자신의 아이를 찾아 몇 날 며칠을 울고불고 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500명 중 한 명의 아이만 없어도 그렇게 난리인데 1명 밖에 없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냐고 하자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며 아이를 보호하고 출생을 담당하는 신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티벳박물관을 외면하고 들어갈 때, 긴 길을 짧은 느낌으로 내려 오면서도 서로 말이 없는 것은 씁쓸한 감정이   나만의 감정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지만, 대안이 없으면서 무작정 유효적절하게  마켓팅 기법을 구사하는 스님들을 탓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무관세음보살  ()()()
 
2005.03.21

 

 

위 옛답사기에 등장하는 "야차"

 

 

 

극락전

예불중이어서 예만 올렸다.

 

 

원오국사 천영 (불교신문)

 

천영(天英, 1215〜1286)은 양씨(梁氏), 호는 충경(鏡),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다. 조계산 수선사 16국사 중 제5세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으며, 자질이 뛰어났다. 천영은 1230년 15세에 수선사 제2세인 진각국사 혜심에게 득도했다. 3년 후에 담선법회의 좌원(座元)이 됐으며, 1236년 선선(禪選)의 중상상과(中上上科)에 급제했다. 이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수선사 제3세인 청진국사의 교화를 받고, 제4세인 진명국사 혼원을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천영은 법계인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돼 단속사에 머물면서 1249년 최우가 창건한 창복사(昌福寺)의 주맹(主盟)이 됐다. 이듬해에는 선원사의 법주(法主)가 되는 동시에 보제사와 9산선문의 주맹이 됐다. 이때 천영은 조계종의 선풍을 진작시키며, <법보단경> 등 서적을 간행했다. 1256년 41세에 천영은 조계산 수선사의 제5세가 돼 입적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보내며 선풍을 떨쳤다. 

 

천영이 송광사에 주석하는 동안 고려 왕실에서는 고종, 원종, 충렬왕 등 세 임금이 교체됐으나 천영에 대한 귀의는 변함이 없었다. 충렬왕은 천영을 서울로 초빙해 가까이 모시고자 사신을 보냈으나 선사는 병을 핑계로 사양했다. 

 

천영은 너그럽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제자들을 대해 그의 문하에는 늘 사람이 붐볐다. 71세에 청을 받아 그가 일찍이 중창하였던 불대사(佛臺寺)에 갔다가 그곳에서 입적했다. 충렬왕은 자진원오(慈眞圓悟)라는 시호와 정조(靜照)라는 탑호를 내렸다. 제자에는 굉묵(宏默), 충지(녑止), 명우(明友), 굉소(宏紹), 신화(神化), 만항(萬恒) 등으로, 당대의 큰 제자들을 배출했다. 

 

충지는 그의 뒤를 이어 조계산의 제6세이고, 제7세 일인, 제8세 정열, 제10세 만항, 제11세 자원, 제13세 복구가 모두 천영의 제자이다. 보조지눌 이후부터 5세인 천영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송광사 산문이 최절정을 이루었다

 

 

자진국사(慈眞國師) 부도

극락전 향좌측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로

 

탑구를 구획하고 이단으로 방형지대석,(중대석은 결실?) 하대석과 상대석. 탑신 옥개석,상륜을 올렸다

 

하대석은

하대석 하단은 팔각, 중단에는 두개 기둥으로 구획하고 사각형 띠를 표현했다.

하대석 하단에는 복련, 상대석은 앙련으로 장식하였다

 

 

세장한 팔각 탑신 전면에는 자진원오국사청조탑慈眞圓悟國師淸照塔이 음각 되었으며 그 후면은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다.

나머지 6면에는 사천왕과 보살상을 새겼다고 하였으나 생령좌도 확인할 수 없으며, 육안으로 존명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신장상으로 보인다.

탑신의 암질은 부도의 다른 부재와 달라 후보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팔각 옥개석의 하부는 겹처마이며,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전각의 반전은 크지 않다.

상륜부에는 복발, 그리고 후보한 듯한 두 개 보주가 올려져 있다.

 

자진국사가 입적한 즈음인 13세기말의 부도로 추정된다.

 

 

상.하대석

 

 

하대석 중단

 

 

 

상대석 당호 앞

볼록볼록한 표면은  무슨 의미일까?

 

 

전면

慈眞圓悟國師淸照塔

 

 

 

 

 

후면

범자문

 

 

 

 

 

 

옥개석 하부

겹처마가 뚜렷하다.

 

 

옥개석과 상륜

 

 

 

 

 

 

송광사에서 배출한 16국사

(1) 보조普照국사 지눌知訥(1158~1210 ) (2) 진각眞覺국사 혜심慧諶(1178~1234)  (3) 청진淸眞국사 몽여夢如(?∼1252)

(4) 진명眞明국사 혼원混元(1191∼1271) (5) 원오圓悟국사 천영天英(1215∼1286) (6) 원감園鑑국사 충지沖止(1226∼1292)

(7) 자정恣靜국사 일인一印 (8) 자각恣覺국사 도영道英 (9) 자오慈悟국사 담당성징湛堂聖澄 (10) 혜감慧鑑국사 만항萬恒(1249∼1319)

(11) 자원慈圓국사 경린景麟 (12) 혜각慧覺국사 경총景聰 (13) 각진覺眞국사 慈雲(1270∼1355)

(14) 정혜淨慧국사 복암復庵 (15) 홍진弘眞국사 선현禪顯 (16)고봉高峰국사 법장法藏(1350∼1428)

 

참고로 송광사 16국사 부도를 아래에 올린다.

 

2018.11.18

 

송광사 16국사 부도

 

 

 

1.보조국사  지눌(송광사 관음전 뒤)

 

 

2.진각국사 혜심(송광사 광원암)

 

 

3.청진국사 몽여(송광사 청진암지)

4.진명국사 혼원(불명)

 

 

5.자진국사 원오(보성 대원사)

 

 

6.원감국사 충지(송광사 묘적암지와 은적암지 중간)

 

 

7.자진국사 일인(송광사 불일암)

 

 

8.자각국사 도영(송광사  감로암)

9.자오국사 담당성징(불명)

10.혜감국사 만항(불명)

11.자원국사 경린(불명)

12.혜각국사 경총(불명)

 

 

13.각진국사 자원(영광 불갑사)

14.정혜국사 복암(불명)

15.홍진국사 선현(불명)

 

 

16.고봉국사 법장(송광사 광원암과 보조암지 사이)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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