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대구...수릉봉산계 표석

임병기(선과) 2017. 12. 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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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봉산계표석綏陵封山界標石

팔공산 수태골 공원관리사무소에서 1km 정도 떨어진 등산로에 위치한 표석이다.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수릉은 조선 헌종憲宗의 아버지 익종릉翼宗陵이고, 봉산封山은 산 출입을 봉封한다는 의미이다.

즉, 수릉 관리와 운영을 위한 숯(향탄)을 생산하기 위한 숲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식이다.

팔공산 동화사 집단시설지구 공원 관리소 앞에도 동일 목적의 봉표가 있다.

따라서 팔공산 남쪽 지역 전체가 출입 금지되었음을 추측게 한다.

 

 

수릉향탄금표.동화사 집단시설지구

수태골의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와 동일 서체로 추측되며 한 사람의 글씨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수릉과 연경묘 관리를 위한 봉표가 이곳을 포함하여 6 곳으로, 경북 의성 점곡, 경주 시령, 불령, 수렴리와 팔공산 수태골, 집단시설지구에 위치한다.(옛님의 숨결 답사기 참조)

 

 

그런데 수릉綏陵은 팔공산에 위치한 봉표 2곳에만 세겨진 명문이고, 다른 4 곳 봉표에는  연경묘延慶墓 라고 하였다.

그 연유가 무엇일까?

 

연경묘 延慶墓

조선 제23대 순조대왕의 세자 효명孝明세자의 묘호이다.

효명세자는 순조 9(1809) 창덕궁 대조전에서 태어나 순조 12(1812)에 왕세자가 되었다. 순조 27년부터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고, 3년 뒤인 순조 30(1830) 22세의 나이로 창덕궁 희정당에서 돌아가셨으며,성북구 석관동에 묘를 쓰고 연경묘라 하였다.

 

수릉綏陵

그 후 아들 헌종이 즉위(1835)하자 효명을 익종으로 이름을 올리고 연경묘를 수릉綏陵으로 승격하였다.헌종 13(1846)  자리가 좋지 않다고 양주 용마산으로 이장하였다가 철종 6(1855) 826일 현재 위치로 옮겼다.익종의 왕비 신정왕후 조씨가 고종 27(1890)

돌아가자 합장하였다. 1899년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경주의 연경묘 봉표 3곳에는 신묘 10월(辛卯十月)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831년에 세운 봉표석임을 알 수 있다.

팔공산의 봉표에는 조성 년대 명문이 없지만 수릉綏陵으로 승격 된 해인  1835년으로 추정된다.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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