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합천...가야산 거덕사지 석탑부재

임병기(선과) 2017. 12. 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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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덕사지

우리카페 달넘새님과 작년 탐문 실패

오늘 우연하게 거덕사지를 여러번 들린 분을 알게 되어 찾아 뵙고 현장을 확인하였습니다.

 

 

홍제암

거덕사지 출발점 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비지정 탐방로인 관계로 가야산국립공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거덕사지까지는 저의 걸음으로 약 10분 조금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길 안내는 생략하겟습니다.

답사를 원하시는 분은 개인적으로 연락주면 상세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삼거리

산죽이 보이는 사진 아래는 홍제암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좌우의 길은 엄청 넓으며 예전에 벌목한 나무를 실은 지엠시 트럭이 운행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좌측 길로 진입합니다.

 

 

좌측에 계곡을 두고 200미터 오르면 개울이 나옵니다.

개울 건너 바로 우측으로 희미하게 나있는 산죽속의 길로 올라가면 넓은 사지가 눈앞에 전개됩니다.

이 개울은 사지에서 내려오는 물길입니다.

 

 

거덕사擧德寺의 창건과 폐사에 관한 자료는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동국여지 승람에 거덕사명과 함께 최치원의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시가 전하나,이후에 발간된 읍지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사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료 검색중에 합천신문에 실린 거덕사지에 대한 기사를 찾았습니다.(합천신문 2016.10.20)

[거덕사지는 "“해인사 서쪽 양계兩溪가 교호(交滸)하는 지점에 난야(蘭若)가 있으니 이가 곧 거덕사(擧德寺)이다. 과거 대가야국(大伽倻國)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처음으로 불연(佛緣)을 맺은 곳”이라고 했다. 거덕사지에 무너져있던 한 괴탑(壞塔)은 1926년에 해인사 명부전(冥府殿) 정중(庭中), 현재는 대비로전(大毘盧殿) 앞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현재 해인사 대비로전 앞 삼층석탑 1~2층의 옥개석과 그 사이 기둥의 색깔은 거덕사지에 있는 괴탑의 색깔과 같다고 확인된다.). 해인사를 창건하던 때가 서기 802년인데, 이때 이미 절은 폐사(廢寺)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출처_이지관 편저 해인사지)]


즉,석순응전에 의하면 거덕사는 해인사 창건 이전에 폐사되었으며, 월광태자가 출가한 사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단 석축

무너진 부분이 많지만 사지 3단 석축 중 가장 양호한 상태입니다.

 

 

중앙부분 돌계단이 남아 있습니다.


 

이 돌계단을 오르내렸을 신선이 된 최치원,스님.보살,민초.

따뜻한 봄날이었다면 계단에 앉아 소설 한 편 그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일장춘몽일지라도...


 

하단 석축과 중단 석축 사이의 평지

석탑부재들이 산포해 있습니다.

 


석조부재

석탑 지대석(1)으로 추정됩니다.

 


석조부재

석탑 지대석(2)으로 보입니다.

 


석조부재

석탑 하층기단 갑석(1) 입니다.

2단 괴임을 상부에 조출하였고, 낙수면 물매가 깊습니다.

 


석조부재

석탑 상층기단 갑석 입니다.

아래 괴임이 굷은 2단 괴임을 상부에 표현하였고, 하부에는 부연이 있습니다.

 


부연이 뚜렷합니다.

 


석탑 상층기단 갑석

 


석조부재

석탑 탑신 입니다.

 


양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초층 탑신으로 추정됩니다.

 


석조 부재

3층 옥개석(1)으로 생각됩니다

 


상부에는 찰주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낮은 노반 괴임이 보입니다.

 


현수곡선이 분명해 보이며,낙수면 물매가 급합니다.

낙엽을 걷어내고 땅을 판 후 손을 넣어 보았더니 층급 받침은 3단이었습니다.

 


석조부재

초층 탑신석(2)으로 추정됩니다.


옥개석에는 전각의 현수곡선이 분명합니다.

 


하부 사진

낮은 1단 탑신 괴임을 표현하였습니다.

 


절수구는 생략되었고,3단 층급은 정연합니다.

사절된 것으로 보았는데 사진상으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단 석축 위 부지

건물지와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건물지는 금당터로는 좁아 보여 탑지 또는 후대에 다른 목적으로 조성한 터로 추정됩니다.

 

 

중단 석축은 위쪽 상단 돌무더기 위에 석탑재가 널부르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돌무더기는 사찰과 관련 없이 폐사후 후대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던져 쌓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거덕사지 위치를 알려주신 분은 거덕사지라는 표현 보다 "탑거리"라는 말을 은연중에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탑거리'는 명칭으로 미루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 민속신앙에는 고갯마루에서 지나온 여정에 감사하며, 앞으로 갈 길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돌을 던지는 의례가 있습니다.

 


석조부재

석탑 하층 기단 갑석(2)으로 판단됩니다. 

 


석조 부재

석탑 상층기단 면석(1) 입니다.

양우주와 탱주 1개가 표현되었습니다.

 


석조 부재

석탑 상층기단 면석(2) 입니다.

 


석조부재

석탑 하층기단 갑석(3)으로 보입니다.

 


석조부재

석탑 하층기단 저석과 면석이 일석인 부재(1,2)입니다.

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석조부재

석탑 하층기단 저석과 면석이 일석인 부재(3) 입니다.

탱주를 새겼습니다.

 


하층기단 면석(1,2,3)과 하층기단 갑석(3) 입니다.

 


석조 부재

일견 치석된 석탑 탑신으로 보았으나, 현장에 남아 있는 탑신석은 양우주가 조출되었으나 이 부재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석탑 부재는 아닌 듯 합니다.

 


중단 돌무더기

상층기단 면석(1,2)와 하단지에 뒤집혀진 옥개석(2)가 보입니다.


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 부재는 지대석 추정(2기),하층기단 저석과 면석이 일석인 부재(3기),하층기단 갑석(3기),상층기단 면석(2기),탑신 (1기), 옥개석(2기)로 추정됩니다.


삼층석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대석 위에 , 1개 탱주와 양우주를 새긴 하층기단저석과 면석을 일석으로 삼고, 2단 괴임을 상부엔 둔 갑석을 올렸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은 양우주와 1개 탱주를 새겼으며, 상층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 상부에는 낮은 2단 탑신괴임을 조출하였습니다.

탑신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낙수면 물매가 급한 옥개석 하부에는 절수구를 생략하고, 3단 층급 받침을 두었으며, 전각부에는 현수곡선이 분명하며 상부에는 1단 탑신괴임을 올렸습니다. 3층 석탑에는 찰주를 마련했습니다.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는 9세기 탑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옥개석 층급이 줄어 들고, 현수곡선이 나타나며 전체적으로 소형화된 2층 기단의 삼층 석탑으로 12세기 중반 고려탑으로 추정 됩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이지관 스님의 해인사지에는 재미난 기록이 있습니다.

"거덕사지에 무너져있던 한 괴탑(壞塔)은 1926년에 해인사 명부전(冥府殿) 정중(庭中), 현재는 대비로전(大毘盧殿) 앞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비로전 앞 탑을 살펴 보겠습니다.


해인사 명부전 앞...출처/해인사 홈피

해인사 대비로전 앞...출처/우리 카페 왕승호님


명부전 앞에 있던 탑을 이건하면서 세척한 모습입니다.

거덕사지에 2기 석탑이 있었다면 도괴된 탑을 옮겨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지를 살펴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거덕사지에 옮겨온 부재를 활용하여 조성된 탑이라는 가정하에 사지에 남아 있는 부재와 대비로전 탑을 비교해보더라도 거덕사지 탑재로 추정되는 것은  2층 옥개석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직접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층급받침이 3단일 경우에 한정됩니다.

제눈에는 근세탑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해인사 성보박물관 뜰에도 석탑 부재가 있습니다.



 성보박물관 석탑


개인적으로는 3층 옥개석이 거덕사지 석탑의 2층 옥개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부재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석탑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상단 석축

뒤편으로는 배수시설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따라 날씨가 차가워 오래 머물지 못 하였습니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리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야 했습니다.

 

언제쯤

폐사지에서 떠남이 익숙해질까요?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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