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동 백송.헌법재판소 후원에 위치 재동齋洞은 계유정란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을 무참히 살해할 이곳에는 시체가 뒹굴었고 골목은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있던 회灰를 가지고 나와 길에 덮을 정도였다. 재를 덮은 이 마을은 잿골(회동, 灰洞)이라 불렸고, 이것을 한자명으로 재동齋洞이라 표기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집터라고 알려져 있으니 조선 전기,후기 역사적 현장의 중심이며 백송은 그 현장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8호.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으며, 1979년 외과수술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내왕한 우리 사신이 가져 온 것으로 추정한다. 백송은 중국 중부와 북서부를 원래의 자람 터로 하는 나무다. 원산지에서도 자연 상태로 만나기가 어려운 희귀수종이다. 특별한 모습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주로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고 있다. 우리나라의 백송은 오래전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처음 가져다 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백색은 밝고 정갈하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고고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 백송의 흰 껍질은 좋은 일이 일어날 길조를 상징한다. 재동 백송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집권과정을 지켜본 나무다. 그가 아직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기 전, 안동 김씨의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정복고의 은밀한 계획을 세웠던 곳이 바로 이 백송이 바라다 보이는 조대비의 사가(私家) 사랑채다. 흥선대원군은 불안한 나날을 오직 백송 껍질의 색깔을 보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 무렵 백송 밑동이 별나게 희어지자 개혁정치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거의 150여 년 뒤인 2004년, 현직 대통령이 쫓겨날 위기에 몰렸을 때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백송 껍질이 더 희게 보였다고 한다.
백송(白松)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소나무 종류 중 하나다. 나무 전체가 하얀 것이 아니라 줄기가 회백색이라서 멀리서 보면 거의 하얗게 보인다. 무엇이든 생김이 독특하면 금세 눈에 띄기 마련인데, 백송도 한 번 보기만 하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인상이 남는다. 하얀 얼룩 껍질이 트레이드마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흑갈색의 일반 소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조계사 백송.고양 송포백송.이천 백사면 백송.예산 추사고택 백송을 답사하였다. 조계사 백송...2015.09.04 고양 송포 백송...2010.11.03 이천 백사면 백송..2007.03.14 추사고택 백송...시나브로님 사진 2016.11.05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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