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순창군

순창...영구산 구암사

임병기(선과) 2016. 11. 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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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강산인 이른 아침의 산사

인기척에 슬며시 요사의 문이 열리며 노스님께서 손짓을 하시더니, 공양하라고 말씀을 하신다.

오늘 아침에는 왜이리 먹을 복이 넘쳐날까?

 

구암사

634년(무왕 35) 숭제 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 조선1392년(태조 1) 구곡 가운이이 중창하였고, 태종때 구암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사찰 동쪽에 숫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고, 대웅전 밑에는 암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암사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 임란의 전화를 입어 전소되었다.

 

 2000년 월인석보 제15권이 발견되어 보물 제745-1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구암사는 사세를 크게 일으키며 많은 선승을 배출하게 된다.

화엄 종주인 설파 상언 雪坡 尙彦(1707~1791), 백파 긍선 白坡 亘璇(1767~1852),정관正觀(?~1813), 설두 유형(1824~1889), 설유 처명(1858~1904) 학명(1867~1929), 영호당 석전石顚 박한영(1870~1948), 운기雲起(1898~1982)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고 한다.또한, 이광수,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등의 문인들과, 청담,청우,서경보,운허,운성, 만암 대종사가 구암사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애연재僾然齋

2층 누각 사찰쪽으로 걸린 현판

 

애련의 의미?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가장 가능성 있는 내용을 찾아 인용한다.

 

예기/제의 禮記 祭義

제지일입실祭之日入室 제삿날 방에 들어가면

애련필유견호기위僾然必有見乎其位 애련히 꼭 그자리에 보이는 듯하고

주환출호周還出戶 돌아서 나오면

숙연필유문호기용성肅然必有聞乎其容聲 숙연히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즉, 훌륭한 조상을 본받자? 라는 뜻이며

의역하면 구암사에서 배출된 많은 고승들의 불법을 계승하는 후학승이 되자라는 상징 아닐까?

 

 

정와靜窩

정와, 즉 고요한 처소라는 뜻이다.

선운사에 있는 원교 이광사 글씨를 복제한 현판이다.

 

 

대웅전 석가여래삼존

 

 

은행나무

1392년(태조 1) 구암사 중건과 무학대사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전한다.

 

 

 

부도전

조선후기 부도 3기, 석전 박한영 부도 등 근대 고승들의 보도가 상하2단 축대에 모셔져 있다.

 

 

3기의 조선후기 부도는 동일한 장인의 작품처럼 보일만큼 비슷하다.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삼고, 2단 기단 부의 하대석은 원형으로 중대석 같다. 상대석은 육각형이며, 원형 탑신석 위에는 옥개석과 노반 보개 보주가 일석으로 올려져 있다.

 

 

정관당正觀堂(?~1813)

 

 

 

설파당雪坡堂(1707~1791)

백파선사의 스승이다.

호남 무장현(茂長縣 :지금 고창군 무장면) 사람으로 효령대군의 11세손이다. 부친은 태영(泰英)이고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조실부모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스스로 살길이 없었다.

19세에 고창 선운사(禪雲寺)에 투신하여 운섬(雲暹) 장로에게 머리 깍고 연봉(蓮峯)과 호암체정(虎巖體淨, 1687~1748 환성지안의 제자임) 두 화상에게 게송을 받았다. 또 회암정혜(晦菴定慧 1685~1741) 스님에게 배웠다. 선종(禪宗)의 계보로 말하면 서산(西山)에게 7세손이 되고 환성지안(喚醒志安 1664~1729)에게 손자가 된다. 33세에 대중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용추(龍湫) 판전(板殿)에서 강좌에 올랐다. 

 

만년에는 금강산, 묘향산, 두류산 등으로 편력하면서 참선을 했으며, 지리산의 영원암(靈源庵)에서 10여년을 지내는 동안 염불을 일과로 하여 하루에 1만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정조 14년(1790) 섣달에 작은 병에 걸렸고 15년(1791) 1월 3일에 기쁜 표정으로 열반에 들었다. 나이 85세 법랍 66세였다. 

 

 

 

백파당白坡堂(1767~1852)

본관은 전주. 속성은 이씨. 법호는 백파. 긍선은 법명이다.
긍선은 1767년(영조 43) 전라북도 무장에서 출생하였다. 12세 때 고창 선운사로 출가하여 시헌 장로에게 가르침을 얻은 이후, 연곡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고, 1790년(정조 14) 지리산 영원암靈源庵으로 가서 설파 상언(1707~1791)에게 구족계를 이어 받았다. 평안북도의 초산 용문암에서 수도하다가 마음이 크게 열려 지리산에 있던 스승 상언을 찾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종지를 받았다.

순창 영구산 구암사로 돌아와 설본 회정대사(1678~1738)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1792년(정조 16) 백양산 운문암에서 100여 명의 학인을 가르치다가, 1811년(순조 11) 문득 법의 진체眞體를 깨닫고 평안북도 초산 용문암으로 들어가 5년 동안 정혜定慧를 닦은 후, 다시 청도 운문사에 법당을 세우고 선지를 강론하였는데 청중이 언제나 100여 명에 이르렀다. 1830년(순조 30) 구암사로 옮겨주석하다가 1852년(철종 3) 86세로 입적하였다

 

 

 

 

백파율사대기대용비 복제품

원래 비석은 선운사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1858( 9) 완() () 를 썼다

 

 

추사의 쓴 선운사 백파 율사비禪雲寺白坡律師碑의 비문은 제자들에 의해 대대로 구암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백파율사의 출가 본사인 선운사에 보내져 비를 세웠다고 한다.

 

추사와 교류는 익히 알려져 있으며,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경상은 백파 긍선의 인품에 감동하여 인근 전답 350마지기를 기부하였고,고종 때 어사 이면상은 절을 중건하기도 하는 등 학자나 정치인들과 얽힌 일화도 많이 전한다.

 

대기대용비...출처/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華嚴宗主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我東近無律師一宗惟白坡可以當之故以律師書之大機大用是白坡八十」
年藉手著力處或有以機用杀活支離穿鑿是大不然凡對治凡夫者無處非」
殺活機用雖大藏八萬無一法出於殺活機用之外者特人不知此義妄以殺」
活機用爲白坡拘執着相者是皆蜉蝣撼樹也是烏足以知白坡也昔與白坡」
頗有往復辨難者卽與世人所妄議者大異此個處惟坡與吾知之難萬般苦」
口說人皆不解悟者安得再起師來相對一笑也今作白坡碑面字若不大書」
特書於大機大用一句不足爲白坡碑也畫正雪竇白巖諸門徒果老記付」
貧無卓錐氣壓須彌事親如事佛家風最眞實厥名兮互璇不可說轉轉」
阮堂學士金正喜撰幷書」
崇禎紀元後四戊午五月 日立」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律師)의 한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白坡)만이 이것에 해당할 만하다. 그러므로 율사로 썼다.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백파가 80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야이다. 혹자는 기(機), 용(用)을 살(殺), 활(活)로 지리멸렬하게 천착(穿鑿)하기도 하나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무릇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하여 다스리는 자는 어디에서건 살, 활, 기, 용이 아닌 것이 없으니 비록 팔만대장경이라 하더라도 살, 활, 기, 용의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한 가지 법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 의리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살, 활, 기, 용을 백파를 구속했던 착상으로 여긴다면 이는 모두 하루살이가 큰 나무를 흔드는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어찌 백파를 충분히 아는 것이겠는가.
예전에 백파와 더불어 자못 왕복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분변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곳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아는 것이니 비록 온갖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율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오게 하여 서로 마주하여 한번 웃을 수 있겠는가.
지금 백파의 비석에 새길 글자를 지음에 만약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는 한 구절을 큰 글씨로 특별히 쓰지 않는다면 백파의 비(碑)로서 부족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써서 설두(薛竇)와 백암(白巖) 여러 문도(門徒)에게 보인다. 다음과 같이 써서 붙인다.

가난하기로는 송곳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기개는 수미산(須彌山)을 누를 만하였네.
부모 섬기기를 부처 섬기듯 하매
가풍(家風)이 가장 진실하도다.
그 이름 긍선(亘璇)이니

전전(轉轉)한다 말할 수 없다네.

완당(阮堂) 학사(學士) 김정희(金正喜)가 글을 짓고 글씨를 쓰다.

숭정기원후 네 번째 무오년(철종 9, 1858년) 5월 일 건립하다.

 

사전 공부 없이 찾은 구암사에서 가슴 벅찬 감동을 얻었다.

좀 더 공부하여

다시 발걸음하리라 다짐해 본다.

 

201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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