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순창군

순창...입석리 입석

임병기(선과) 2013. 8. 2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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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 석산리 마애석조여래입상을 찾아 가는 길목 입석리 승강장. 옆에 마을의 유래가 어린 입석이 두 기 조성되어 있다. 석산리 마애여래도 여기서 도암마을로 안내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이 길은 순창의 "예향천리마실길" 입석마을~도왕마을 코스 이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입석은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선돌 입암 등으로 불려지며 고인돌과 더불어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다. 선돌은 동제의 공간이며 부락민의 신앙대상으로 숭배 받기도 한다.  마을의 경계, 벽사 기능과 함께 족장의 권위, 남근의 모습으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입석의 연혁

 

 

위의 기념비에 기록된 연혁을 간단히 살펴보자(혹 해석이 잘못 되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

 

입석마을 입석은 남평현감 겸 나주진관을 역임한 세종대왕자분의 8세손(휘 상립 호 송암 / 이름은 미쳐 확인하지 못했다)과 밀양 박씨 박봉형(?) 두 분이 영조 2년 1727년에 불암사 종소리만이 산천 적막을 깨우는 고요한 마을에 정착하였다. 정착을 기념하여 이씨는 정자나무(?)를 박씨는 팽나무를 심은 후 이를 기념하여 입석을 세웠다.

 

그 후 1984년 도로공사로 인해 통수천변에서 이곳 삼거리로  이건하였다. 후손들은 앞으로도 입석을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길 바란다. 이는 마을의 애환과 역사를 간직한 입석을 세운 선조의 뜻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입석은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벗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세운 듯하다.

 

또한 기념비에는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이 속했던 사찰에 대한 폐사의 단초를 기록하고 있다.

불암사가 폐사되자 마지막 승려 도주道州스님이 동치8년(서기1869년 3월 25일) 사찰 임야를 조진상씨에게 팔고 떠나면서 입석을 부여잡고 "나는 사찰을 떠나면 이슬과 같이 사라지지만 너는 불암과 더불어 영원히 우리 고을을 지키리라"하면서 울었다"는 내용이 있다(사실 여부는 논외로 한다).

 

위의 내용으로는 입암이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의 고인돌이 유존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세워졌던 입석을 옮겨와 두 그루 나무와 함께 마을 당산목과 마을 수호신으로 모신 듯 보인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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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알고 있을텐데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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