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완주군

완주...단암사 미륵불

임병기(선과) 2016. 11. 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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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말 서암(西)이 창건하였다. 조선 중기 진묵() 일옥(: 1562∼1633)이 주지로 지낼 때까지는 다남사()라고 불렀다. 언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절에는 석굴이 있는데, 굴속의 구멍에서 절 식구들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누군가가 욕심이 나서 더 많은 쌀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크게 뚫었으나 피만 나오고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설화가 전한다.

1592년 임란때 왜군이 이 일대를 지나갈 때 말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는 설화도 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왜장이 굴에 들어가 보니, 굴 안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미륵불이 현신해 있었다. 왜군이 이곳에 머무르며 하루 동안 기도를 드리자 비로소 군마들이 갈 수 있었다고 한다...두산 백과사전 

 

 

스님께 인사 여줍고 미륵불을 뵐려고 하였으나

예불이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고 있어 조용히 미륵전으로 향했다.

 

 

미륵불

미륵전으로 들어가면 유리창 안쪽 동굴에 봉안된 분이다.

 

 

불상 이미지 보다는

보살 또는 명부전에 모셨던 시왕 분위기다.

조성시기는 19세기말 이후로 추정된다.

 

소조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석조상에 호분을 입히고 채색을 하여 모셨던 것은 아닐런지...

 

 

미륵불 전설

현암 주지스님이 2015년 12월 08일 새만금일보에 기고한 글

 

임진왜란 중 왜군이 구진벌(현재 소양면 구진마을 일대)의 저항을 물리치고 기세등등하여 황운벌(현재 소양면 황운리 일대)을 달려나가 신조벌(현재 소양면 신교리 일대)에 이를 즈음 아군의 이정란 장군의 휘하 정비장이 황급히 달려 와서 말합니다.
"지금 우리 군사의 진은 넓어 전면전이 되면 수적으로 감당키 어렵습니다. 장군은 경각을 지체 마시고 전략을 바꿔 산악 쪽에다 포진함이 상책인가 합니다." 이정란 장군은 정비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일어나 적의 동태를 내다봅니다. 왜병들이 구름같이 내달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순간 결단을 내렸고, 나팔소리를 울렸습니다.


단위부대의 깃발들을 일사분란하게 요소요소로 분산하여 일대 회전의 완벽한 포진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맑은 날씨인데, 난데없이 맞은편 숲속에서 자욱한 안개가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꼭 생솔가지를 지피는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듯 피어올라 삽시간에 산하를 덮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아군의 진지는 감쪽같이 안개 속에 감추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 왜군들은 벌떼처럼 들이닥쳤으나 멀리서도 분명하던 조선군 진지가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조화이며 어떤 신출귀몰의 전법인지 알 수 없는 왜군들은 겁을 먹고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정란 장군은 기습공격 명령을 내리고 북을 쳐 독전했습니다. 빗발치는 화살, 불꽃 튀는 창검, 노도 같은 함성이 뒤범벅된 혼전 속에 왜병들은 아수라장을 이루며 패퇴하기 시작합니다. 마침 바람이 적 쪽으로 불어주니 안개에 갇힌 적은 더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용맹하다는 이름의 왜장 고바야가와도 미칠 지경이 되어 이리 저리 패잔병을 수습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갈팡질팡하다 문득 숲 속에서 연기 같은 안개가 마구 쏟아져 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말을 휘몰아 갑니다. 그도 안개의 진원지를 부수지 않고는 조선군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코앞도 안 보이는 숲 속으로 뛰어든 왜장은 초가 한 칸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 집속에서 안개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장검을 휘두르며 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문지방 너머로 "원당(願堂)"이라 써 붙인 현판이 보일뿐 괴기하기만 합니다. 왜장은 소름이 확 끼치는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대담한 장군이라 마루위로 성큼 올라서며 칼을 내리칩니다. 일격에 문이 부서져 내린 방안은 천장과 벽이 뚫어져 하늘이 새는 한쪽 벽면에 "미륵불"이 안치 되어 있었고 그 미륵불 몸에서 안개가 펑펑 피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옳지 이놈 미륵불의 조화로구나" 라고 깨닫는 순간 벼락 치듯 칼로 미륵불을 내리 칩니다. 순간 미륵불의 몸에서 번개 같은 흰 무지개 꽃이 날리며 금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입니다. 안개는 멈추었지만 왜군은 이미 크게 손실을 입고 흩어진 병력을 재정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아군은 손실하나 없이 크게 승전하고 사기충천하여 안덕원 본대로 돌아 갈수 있었으며 안덕원 진지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때의 미륵불은 내를 건너 단암사에 안치했습니다. 그 뒤 신의 도움으로 승리한 전투를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신조(神助)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미륵불이 있었던 곳은 "원당(願堂)"리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글은 2008년 9월 2일 소양면주민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한 "소양의 전통과 문화 우리들의 자랑" 자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미륵불에 대하여

그런저런 상념에 젖게 하는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들려와 그들과의 인연을......

 

 

201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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