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공주시

공주...주미사지

임병기(선과) 2016. 4. 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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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동 57번지 마지막 민가 주차장에서 보이는 바위군 뒤편이 주미사지다.

주미사舟尾寺명은 공주시의 풍수형국이 주형이며 주미사가 자리한 산이 배의 꼬리에 해당되는 주미산이어서 유래된듯 하다.

그러나 창건과 폐사 시기는 전하지 않으나,공주의 서혈사지, 남혈사지와 함께 석굴사원으로 추정한다.


사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와당. 치미 등이 발굴되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우조에 절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16세기까지 향화를 피웠음을 알 수 있으나 1799년 발간된 법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미사지는 산 능선을 따라 금당. 석탑.석등이 하나의 축선에 배치된 전형적인 1금당 1탑식의 구조로 백제의 전형을 따른 가람배치로 생각된다.


 

금당지. 석탑기단. 석등기단


 

 

주미사지에서 발굴된 유물은 국립공주박물관. 공주대학 박물관에 전시중이라고 한다.



           

 

주미사지 출토 막새...공주박물관


 

석등과 석탑을 자연 암반위에 위에 모셨으며 금당 기단부 일부도 본래자리에 있던 암반을 활용했다.

자연 암반은 일견 고인돌 처럼 보인다. 특히 연화문 하대석이 조식된 석등 기단부는 굄돌이 낮은 남방식 고인돌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석등 하대석

자연암반 상면에 방형 괴임을 두고 그 위에 복련의 하대석이 조성되어 있다.

하대석 하부에는 안상이 조식되어 있고 상부에는 복련과 석등 간주석 지지공을 두었다.


이러한 작례의 석등을  답사한 경험이 없다.


 

  

 

금당과 석등 사이에 자리한 석탑 하대석

자연암반 상면에 괴임으로 두고 그위에 석탑을 올렸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 암반 위에 석탑을 조성하는 경우에는 단독으로 조성한 비보석탑이 대부분이지만  주미사지 석탑처럼 금당앞에 세워진 사례는 기억에 없다.


 

주미사지 석탑 부재


사지에 산포된 석탑재를 통하여 석탑과 석등의 조성시기를 추정 할 수 있다.

물론 석등과 석탑이 동일 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다.


 

옥개석


 

 

 옥개석 층급받침

자연 암반위 석탑 옥개석의 굵은 3단 층급받침은 고려중기에 보이는 작례로 알려져 있어 주미사는 통일신라 하대에 창건되어 고려중기 이후 사세를 확장하였으나 18세기 이전 폐사된 사찰로 짐작되어진다.


 

양우주가 조출된 면석


 

 

금당지

정방형터로 장대석 외에는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금당지 우측 자연 암반을 캐내지 않고 기단부로 활용하였다.


 

사지 전면 바위군의 사리공


 

사지에서 수습된 기와, 자기편

자료에 의하면 통일신라 시대, 고려, 조선시대 와편과 도자편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봄날

폐사지에서는  꿈을 꾸어야 하는데


호접몽, 호접몽...


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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