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포천시

포천...태봉 석물

임병기(선과) 2015. 10. 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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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 석불 뵈러 가는 길. 영평천 도로변에 소공원 모습의 앞쪽에 하마비가 보인다.

태봉산에 있었던 익종의 태봉 석조물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밀반출되고 남아 있는 부재를 수습 1977년 현위치에 보호하고 있다.

 

익종(1809(순조 9)∼1830(순조 30). 조선 후기 추존왕)

"이름은 영(旲 : 원래의 음은 대이나 영으로 부르도록 정하였음.),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 제23대왕인 순조의 세자(世子)로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로 조순(祖淳)의 딸이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인 풍양조씨(豊壤趙氏)를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인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어진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동시에 모든 백성을 위하는 정책의 구현에 노력하였으나 불행히도 대리청정을 수행한 지 4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세자빈인 조씨 일족들이 그 뒤 대거 진출하여 안동김씨(安東金氏) 일파와의 정치적 세력투쟁이 시작되어 정국을 혼란상태로 이끌어갔고, 이와 같은 사실은 지배층의 대립을 더욱 격화시켜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민생을 도탄상태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한 뒤 왕으로 추존되어 익종이라 하였다. 묘호는 문호(文祜),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綏陵)이며, 시호는 효명(孝明)이다"...출처/다음 백과

 

 

 

익종 태봉이란 자료가 없더라도 아기비가 아니라  왕으로 추존된 가봉비임을 알 수 있다.

1809년(순조 9) 8월 9일에 태어난 원자의 태(胎)가 9월 3일에 지금의 성동2리 향교골에 소재한 태봉산(胎封山), 즉 당시의 영평현 상면리 고향교동古鄕校洞 유좌지원酉坐之原의 길지였던 이 봉우리로 낙점되었다. 이후 11월 20일에 시역(始役)하여 장태 길일인 12월 12일에 안태사로 임명된 지돈녕부사 홍명호의 책임 아래 필역 후 아기비를 세웠다. 1836년(헌종 2)에 태실이 태봉으로 가봉되어 3월12일 기봉비를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귀부와 가봉비

 

 

중동석

 

 

중동석과 개첨석, 동자석

 

 

포천에는 익종의 태비 외에도  고려 왕건의 소생 정희 왕녀 아기씨의 태실로 전하는 송우리 태실,  1735년 영조의 후궁에서 태어난 애기씨의 태실인 무봉리의 아기비, 1738년에 태어난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의 태실인 만세교리의 아기비가 남아 있다.

 

근자에 경북성주의 생명문화 축제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 유린당한 태봉을 복원하는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하겠다. 특히 성주의 세종대왕 자태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원과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0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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