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덕군

영덕...강구 척화비

임병기(선과) 2015. 9.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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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전국에 설치되었던 대원군 척화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런던 중 개인적으로  학술자료를 준비할 기회가 되어 기존에 보관중인 자료에 추가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척화비에 대하여  현황 파악, 문화자원으로 활용 방안 등을 조사해보기로 하였다.


우선

저인망 식으로 경북 지방을 세밀히 조사하던 중에 영덕군 홈페이지에서 강구항에 척화비가 있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 "조선시대 후기인 고종8년(1871)에는 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경계하기 위하여 연안 일대에 척화비를 세울 때 강구항에도 이 비가 세워질 정도로 중요한 항구였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79년 2월10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를 접하였다.



영덕군 오포리에 대원군 척화비 발견



1979년 2월 10일 동아일보 기사

난방용 솔방울을 채취하러(상세 검색하여 확인한 사항임) 학생들과 학교뒤에 올랐던 선생님에 의해 척화비가 발견 되었다는 기사이다. 지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월동용으로 초교에 공급되던 조개탄은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70년에 초교를 졸업한 나역시도 그런 경험이 무척 많이 남아 있다.



신문기사의 사진을 접한 후 직감적으로 강구초교로 이건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강구초교 교정을 촬영한 여러 사진을 검색하여 강구초교 교정에 있음을 확인 후 강구초교로 달려 갔다.



거의 온전한 형태이다.

그런대도 영덕 척화비 존재 유무가 등재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상부에 "양이침洋夷侵 和화 主和주화" 6자를 정으로 훼손하였다.




대원군 척화비와 교정의 향나무.

임오군란 후 일본공사의 명으로 철거된 척화비와 일제 강점기에 민족혼 말살책으로 초교에 조성한 향나무의 동거는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어쨓든

나의 척화비 탐색은 영원히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될 것이다.


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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