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밀양시

밀양...미륵암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5. 3. 2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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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리 아랫마을에서 과수원 사이 소로를 통하여 제법 오른 후에 미륵암에 닿는다. 흔한 일주문도 사치인양 단촐한 산문이지만  아금강, 흄금강이 사찰을 수호하며 사바에 물든 답사객들에게 통과의례를 은근히 강요하는 듯하다.

 

 

산내면 홈페이지 지명 유래에 따르면 아래 미라리美羅里마을이 예전의 마을 골짜기의 미륵사라는 절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현재에도 마을 골짜기를 미륵골 또는 미릿골로 불리어 지고 있어 사찰 창건은 그 이전으로 보아야 하며 석조여래가 미륵암에서 조성되었다면 고려 초기 부터 사찰이 유존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은 확인되지 않고 1942년 박원수가 창건하였으며 현재는 밀양 박씨 원당 사찰이라고 한다.

 

 

미륵암 사적비.

 

百嶝山彌勒佚 0 壞傷故重刱

自當物資成功 0 至 0000

0000代流傳也

乾隆 28年 癸未 三月初九日立

 

1763년(건륭  28년, 영조  39년)에  세운비로 석조여래를 보수하여 모셨다는 내용이다.

 

 

주지스님께서 경상도 사투리로 사찰내역과 석불(미륵불)전에 지극히 기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고 특히 상호를 "찌무면" 더욱 효험이 있다고 한다. 

 

미륵전은 2단의 기단. 정측면 2칸,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어칸 4분합 협칸 3분합의 빗살창살문이다.

 

 

미륵전을 완전 개방하시며 미륵불의 내력과 포토라인? 등을 소상하게 일러 주신다. 우리나라 큰 사찰과 대부분 절집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사찰 사적비에는 신라고불로 기록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미륵불로 봉안되어 있다. 양식상으로는 통일신라불상을 계승한 고려초기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복련이 고운 하대석. 팔각 중대석.앙련이 핀 상대석의 대좌와 불신, 주형거신광배를 갖춘 불상이었을 것이다.

 

 

상호는 후보하였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통견의 법의, 매듭이 이채로운 승각기, 오른쪽 어깨 너머로 부터 팔목에 이르기까지 얇은 대의를 걸쳤다. 수인은 항마촉지인, 결가부좌한 하반신이 두터워 안정감 있다.

 

 

수미단 아래 부분의 복련을 새긴 하대좌가 보인다. 팔각중대석은 결실된 듯 하다.

 

 

승각기의 매듭. 스님께서는 부처님 발자욱이라 하시며 미륵암에서 몇분의 스님이 견성하실거라고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우리카페 추구님의 글에 재미난 설화가 실려 있다. 우리민속에서 보이는 기자신앙 설화의 하나로 생각된다.

 

"어느날  마을  주민이  길을  가는데  땅  속에서  갑자기  남자미륵이  쏙  올라  오길래  가만히  쳐다  보니  남자미륵이  땅  속으로  쑥  들어  가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그  자리에  가  보니  여자미륵이  땅  속에서  나와  있었다고  한다. 그  미륵이  현재  미륵암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이라고  한다."

 

 

 

 

광배편

 

 

반야용선

 

 

 

 

모과나무

 

 

미륵암 옆에 매몰되어 있는 석조물. 스님께서는 예전에 주석하셨던 선승들이 생식을 하기위해 곡식을 찧었던 돌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는 하부가 좁다는 기능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용도를 유추할 수도 없었다.

 

 

마실 나간 아지랑이는 아직 돌아 오지  았았지만

우리는

봄을 가득 느끼며 미릿골 미륵암을 나왔다.

 

주지스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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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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