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홍성군

홍성...고산사

임병기(선과) 2014. 11. 1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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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사. 2004년 4월 이른 아침에 들렸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 촬영을 즐기지 않아 한 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2014년 답사 동선 수립에 도움을 준 홍성에 거주하는 내포문화관광진흥원 한건택 원장님이 사진 촬영에 도움을 주겠다며 동행하였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추억이 되어 버렸고 곱게 단장한 절집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10년 전 노보살님이 계시지 않아 아쉽기 그지 없었다.

 

2004년 글이다.

워낙 새벽잠이 없기도 하지만 낯설은 지역, 더구나 혼자라서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홍성으로 향했다. 그 길에는 세상과 입맞춤 하는 잎새의 파릇한 수줍음이 산과 들에 가득해  몰래 입술을 내밀고 입맞춤을 즐겨본다. 그런 푸르름이 가득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중에 연세 지긋한 할머님이 차를 세워 모셨더니 여정에 없었던 고산사에 계시는 보살님이라시며 절에 잘생긴 미륵부처가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게 왠 횡재인가? 제법 긴 산길을 올라갔더니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대광보전과 요사만 갖춘 작은 가람이 축대위에 다소곳히 자리잡고 있다. 전각사이의  미륵불은 차렷자세로 왼손은 사무외인의 수인이며, 나발에 준수한 용모의  석불이다. 그사이 요사에 들어가신  노보살님이 커피 한 잔 하시라며 밖으로 나오셨다.

산사에서 커피, 그 맛도 일품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미륵부처는 10여년 전 고산사 뒤 산속에 방치 되어 분을 옮겨 왔다고 한다.그러시더니 미륵불이 이승만 대통령과 닮지 않았는냐고 물으신다.  내눈에도 낯설지 않은 까닭이 그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대광보전 앞에는 어느 가난한 절에서 배고픔을 못이긴 듯 여린 3층 석탑이 제짝을 잃어 버리고 기단에 희미하게 안상만 남아 있어, 안스러움에 헤매일 쯤 보살님이 "처사님은 참 이상하군요, 다른 사람은 전각만 살펴보고 간다며" 석불과,석탑에 관심을 두는 나에게 맘속에 간직한  말씀을 하신다.

아! 그렇구나
무심코 본 안내문이 떠오른다.대광보전은 조선 초기의 양식으로 주심포, 다포가 복합된 건물인 탓에 많은 건축과 관련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전각으로, 우리 카페에 최성호님을 비롯 여러분의 건축 전문가가 계시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짧은 안목으로 잠시 설을 풀어 보아야 겠다.

고려말 까지 건축의 형식은 주심포/맞배지붕이 일반적이었으나 조선초에 이르면 맞배와 팔작지붕이 혼재하며, 부석사 무량수전이 그 과도기의 건물로 주심포/팔작지붕을 취하고 있다.  주심포/맞배--주심포/팔작--다포/팔작 형태로 양식의 변천은 이어진다. 그후 임란,호란을 거치면서 사찰 살림의 빈부에 따라 가난한 절집은 기존의 팔작지붕도 맞배로 중수하는
사례도 남해안 절집에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성리학이 조선 사상의 중심에 있기에 향교의 대성전,서원의 사당에는 간결,소박의 통치이념에 부응하여 맞배지붕을 택하였다.이러한 일반적 건물의 양식과 달리 고산사 대광보전은 주심포의 팔작지붕이면서 다포에 있는 평방이 있고, 천정도 주심포 / 맞배의 양식인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 천정(민가에서는 삿갓천정)이 아니라 井자형의 우물천정이라 건축학도들에게는 매력적인 답사지인 것이다.

법당으로 들어서는 등뒤로 노보살님이 좀 전에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내꿈에 자주 지장보살님이 현몽하셔서 보살님의 소원은 살아 생전에 명부전을 갖추는 것이라고..."
보살님의 원력이 성취되길 빌며 작은 정성을 보탰건만 고산사를 나오는 발길이 쉽게  절집을 떠나지 않더라!

                                                                                200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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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사진

 

 

고산사 대적광전. 문화재청에는 아직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최소 2기 이상 석탑 부재의 조합

 

 

 

 

 

 

 

하부의 마감이 아쉽다.

 

 

 

이승만 대통령을 닮았는가?

 

 

 

대적광전의 아미타불?

 

 

 

불상대좌

 

 

상대좌 앙련하부의 3단 받침. 연꽃문양이 보인다.

 

 

 

 

노보살님이이 계셨으면 마음이 넉넉했을텐데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2014.10.24

 

*** 우리카페 한악어님의 댓글을 첨부합니다.

 

대적광전의 현판은 인근 결성읍성내에 있던 선학사가 폐사되며 옮겨온 것입니다. 원래는 극락전이라 해야겠지요.. 동네 이름이 무량, 원무량이니 여기에서 연관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성현의 치소는 조선시대 고산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신금성이에서 현재 결성읍성의 석당산 정상부로 옮겨집니다. 이 석당산 정상부 남쪽 아래 혹은 현재 결성읍성터 주변에 사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고산사의 탑과 석불입상은 제 위치가 아니고 그 아래 원무량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폐사되어 방치된 것을 고산사로 옮겨와 조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세척을 하여 깔금해서 보기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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