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제천시

제천...월광사지

임병기(선과) 2014. 11. 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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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원지. 사자빈신사지.상하덕주사를 거쳐 송계계곡을 따라 좌측 식당을 목표로 하면된다. 계곡에 놓인 다리 월영교를 건너든지 아니면 주변 도로에 주차하여야 한다. 사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없어 출입구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원랑선사 모형비석이 설치된 월영교를 등지고 1시 방향 밭둑을 통해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밭둑을 올라서면 정면으로 월악산 봉우리가 보인다.

 

 

캐러번 처럼 긴 행렬이 고추밭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5분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산하라는 방송이 메아리로 들려온다.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며 사전에 공원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 가능하다며 한치의 여유도 주지않고 하산을 종용하였다.

 

 

다음날 새벽 숙소에서 6시 출발한 일단의 침투조가 인적이 드문 월악산 등정을 시작했다. 6~70년대 시절이었다면 간첩으로 오인하여 근처 군부대 오분대기조가 출동하지 않았을가?

 

 

사진 좌측 상단. 달이 보인다.

 

 

사지주변. 민묘가 들어서 있다.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월악산 월광사지. 월광사는 효소왕 때에 도증道證(?~702) 에 의해 창건되어 조선 전기까지 향화를 피웠다. 사지에는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가 있었던 터와  부도 석재, 석축이 남아 있고,  기와편, 토기편, 자기편이 산포되어 있다. 월광사는 처음에는 법상종 사찰로 시작되었으나 성주산문聖住山門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낭혜화상朗慧和尙의 제자였던 원랑선사圓朗禪師(816~883)가 머무르면서 선종사찰로 바뀌었다.

 

 

사역1. 부도 지대석

 

 

부도 상대석.하대석

 

 

 

 

 

부도하대석

 

 

2단의 부도 하대석중 아래 하대석

 

 

사역2. 석축, 석종형부도가 있다.

 

 

상륜이 망실된 석종형 부도

 

 

 

사지 2. 석축

 

 

와편

 

 

사역3. 사역 1에서 언덕 너머 100미터에 위치하며 현재 석축, 민묘가 있다. 석축에는 부도재가 보이며 상석도 부도재로 보인다.

 

 

부도 상대석.하대석

 

 

부도 하대석?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된 하대석의 하단?

 

아니면 지대석?

 

 

부도 하대석의 중단?

 

 

상대석의 연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광주박물관 중흥사지쌍사자석등 하대석 상단에도 이런 문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더욱 심하게 흐들리는 모습은 영동 심원리부도에 보인다.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는1988년  월광사지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대불정주비(大佛頂呪碑).1988년 2월초에 한수면 송계리에서 덕주골까지 도로확장공사중 월광사지(月光寺址) 입구인 송계리 답(沓) 147번지 논둑에서 발견되었고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하덕주사(下德周寺) 경내로 옮겨 비각을 세웠다.

 

비문은 첫줄에만 한자로 대불정주(大佛頂呪)라 새기고, 다음 줄부터는 범자문(梵字文)으로 새기었는데 모두 11행이다. 각 행의 자수도 고르지 않고 범자로 새긴 부분은 글자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다. 4행까지는 8자, 5~6행은 7자, 7~11행은 12~13자로 글자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글자 수는 모두 105자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월광사(月光寺)와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월광사는 원랑선사탑비(圓朗禪師塔碑: 보물 제360호)가 있었던 곳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명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석은 질이 떨어지는 화강암 자연석으로 세로 161cm, 가로 163cm의 방형을 이루는 자연석으로 모두 둥글다. 두께는 상단부는 30~40cm로 불규칙하며, 하단부는 28cm이다. 특히 하단부 바닥면은 정으로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여 비의 좌대 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범자문비는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4개가 소개되고 있다. 이는 모두 대불정다라니당(大佛頂多羅尼幢)이라는 동일 제호들로 모두 현재 휴전선 북방에 있다. 광주의 십신사지 범자비(광주시 유형문화재 제3호, 광주민속박물관 앞뜰 소재)가 이름대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도 범자비라고 하였으나 비신 상단부에만 범자의 옴(Om)자를 도안화하고 있을 뿐 비문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엄밀히 보아 범자비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 남한에는 이 송계리의 『大佛頂呪碑』가 사실상 유일한 ꡒ범자문비ꡓ라고 할 수 있다"...제천시청

 

 

고향 월악산 월광사지를 떠나 낯선 중박에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물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이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려, 김영이 글을 짓고, 글씨는 구양순체의 해서체로 순몽이 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형식화된 조형이다. 머릿돌에 새긴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체적으로 탑비의 머리·몸·받침 각 부분의 비례감이 훌륭한 비로서,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원랑선사가 돌아가신 후 진성여왕 4년(890)에 세워졌다."...문화재청

 

 

 우리를 마중 나온 달.

 

퍽이나 수줍은 얼굴이다. 

 

달빛에 물든 그날의 이야기를 건내려는 듯 오래동안 사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20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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