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2008년 글로 대신합니다.
2019.05.25 |
아래는
2008년 글
장락동 모전탑을 지키는 사찰로 한국사찰정보 자료를 가져 왔다. 제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장락사는 옛날 정거랭이라 불리는 벌판에 있는 평지사찰이다. 선학원소속으로 재천시내에서 영월방면으로 가는 35번국도를 따라 1㎞정도 나가면 철도와 지방도가 나란히 달리는데, 그곳에서 우측으로 펼쳐진 곳이 장락사가 있는 장락동이다.
우측 넓은 벌판은 옛날 통일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세웠다는 창락사가 있었던 곳으로, 이곳을 지나 태백선철도를 건너면 높이 9.1m의 칠층모전석탑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 장락리 옛 절터가 한창 발굴 중에 있으며, 칠층모전석탑 뒤로 장락사가 있다.
현재 장락사가 자리한 곳은 옛 문헌에 보이는 정거랭이 벌판으로 정거랭이 사방 오리가 옛날 창락사(昌樂寺)가 있었던 절터라고 하니 이곳에 큰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또 장락동 칠층모전석탑과 그 주변에서 금동불상, 금동편, 그리고 백자편이 발견되어 그 심증을 확인해 주고 있다. 하지만 모전석탑이 세워졌던 절이나 모전석탑 자체에 대한 문헌기록은 전하는 바가 없어 사찰이 언제 창건되었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탑은 회흑색의 점판암 재질로 조성된 모전탑이다. 현재 높이가 9.1m이며 건립연대는 조탑형식이나 전재가공)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로 이견이 분분하다.
전탑의 형식적 특징인 규모가 크고, 낮은 단층기단, 비대한 초층탑신의 감실, 후대에 지붕에 기와를 입히고 있고, 감실 전면 인왕상 시립시키며,사방에 사자를 존치하는 등의 특징 중의 몇 가지가 보인다.
단층기단, 1층탑신 네 귀에 화강암 석주를 세웠고 남북으로는 감실이 있다. 2층 이상의 몸돌, 지붕돌은 점판암을 절단하여 쌓아 올렸으며 특히 옥개석은 상하에 층급을 두었다.
각층 체감률이 적당하여 장중한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동란시 붕괴 직전이었으나 1967년 해체 복원 되었다고 한다. 이때 7층 옥개 상면에서 꽃모양이 투각조식된 청동편이 발견되어 상륜부 구성은 청동제로 조성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장락동 모전탑을 장수탑으로도 불리우며 달빛 설화가 전해 온다.장수탑전설은 창락사터에 남아 있는 칠층석탑에 얽힌 이야기로 옛날 어떤 부자가 시주를 하러 온 노승에게 쌀 대신 모래를 퍼주었다. 며느리가 나와 대신 용서를 빌자 노승은 화를 면하려거든 어서 이 자리를 피하라고 이르고는 사라졌다. 그러자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면서 집은 탑으로 변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며느리는 그만 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려시대와 통일신라 등으로 견해가 갈렸던 충북 제천 장락사지 7층모전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유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래는 금년 6월 발굴 조사 신문기사를 옮겨왔다.
축조시기를 두고 학계의 의견이 엇갈렸던충북 제천시 장락동의 장락사지7층모전석탑은 통일신라 때 세워졌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나왔습니다. 충청대 박물관은 장락동 일대 장락사지 3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를 열어 석탑 기단부 조성기법이 통일신라때와 비슷하고 바로 앞에서 통일신라 건물터가 나온데다 석탑 서쪽의 담터에서도 기와 등 통일신라 유물이 출토된 점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같이 보고했습니다. 2008.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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