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순천시

순천...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석조물

임병기(선과) 2014. 7. 3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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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으로 낙안읍성이 보인다.

 

 

낙안면 남내리 219 시립뿌리깊은나무 박물관.

 

"박물관은 70년대 후반, 전통문화 부흥을 꿈꾸던 세대에게 익숙한 최초 한글전용 잡지《뿌리깊은나무》,《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인 故한창기(1936~1997)선생의 삶을 고스란히 엿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은 한창기 선생이 살아생전 모아둔 6,500여점의 유물들인 유기, 도기, 민속품, 회화 ,목기, 서책 등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청동기부터 광복 이후까지의 620여점의 토기, 생활용구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최근에 새 단장을 한 기획전시실에는 한국 민화 등 50여점의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의 멋들어진 한옥 ‘수오당’은 1922년에 건립된 백경 김무규(국가중요무형문화재 83-1호)선생의 고택으로 영화 ‘서편제’에서 사랑채 누마루 앉아 김무규 선생이 직접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전라닷컴

 

 

 베이비부머 우리세대에게는 익숙한 잡지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선생 얼마나 많은 님들이 기억할까?

 

한창기(1936. 9. 28 전남 보성~ 1997. 2. 3 서울)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월간 문화종합잡지〈뿌리깊은나무〉, 월간 여성문화잡지〈샘이깊은물〉의 발행·편집인이었다.

 

한창기는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가 법조계가 아님을 깨닫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8군 영내에서 미군들에게 귀국용 비행기표를 파는 일을 했고, 이어 영어 성경을 팔았다. 그리고 미국 시카고의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사에서 한국 땅에 영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aedia Britannica〉을 보급하는 권리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1968년에 한국브리태니커회사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창립 당시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사의 편집부위원장이었던 프랭크 B. 기브니가 사장을 겸임하면서 부사장을 맡았던 그는 1970년 사장이 되었다.

 

그 때부터 1985년 회사를 떠날 때까지 한국 직판업 제1세대의 전설적인 수장으로 추앙받았다.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사업적인 성취가 순조롭던 1970년대에 들어 그는 기존 잡지와는 전혀 다른 문화잡지의 창간 구상에 골몰해, 이윽고 1976년 3월에 〈뿌리깊은나무〉 창간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잡지는 한글전용, 가로쓰기, 전문 미술집단의 지면배열 참여, 일관된 문화적 시각,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어린 탐색 정신과 더불어, 입말과 글말, 지식인 언어와 민중 언어의 조화로운 합일과 국어의 얼개와 어휘에 두루 유념한 편집·교열 등으로 혁신적인 간행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잡지는 한편으로 출판·언론인으로서 그의 지향을 선언한 물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는 한글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가던 1980년 8월에 신군부 세력에 의해 공식적인 이유 없이 강제폐간되었다.

 

그 때부터 한창기는 출판활동에 진력해 1983년에 남한 땅 종합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11권을 완간했다. 이 지리지는 조선 시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與地勝覽〉 이후 최초로 간행된 본격적인 인문지리지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1회 '오늘의 책'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한국일보〉의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스승은 근대화의 세례를 덜 받은 '무식한' 촌노인들이라고 통찰해 그들이 구술한 '나의 한평생'을 엮어내기로 하고,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시리즈를 1982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했다. 1991년까지 모두 20권이 나온 이 시리즈도 〈한국일보〉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전통음악을 음반에 담고, 그 해설과 함께 악보, 사설과 가사를 완벽히 채록해서 수록한 해설집을 내는 일도 그가 요긴히 생각한 출판활동이었다. 그리하여 유파가 서로 다른 판소리 다섯 마당을 각각 모은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뿌리깊은나무 판소리 다섯 마당〉을 비롯해 〈뿌리깊은나무 산조 전집〉·〈뿌리깊은나무 슬픈 소리〉·〈브리태니커 팔도소리 전집〉·〈해남 강강술래〉 등을 만들어 선보였다.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은 한국방송공사(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미 1974년부터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100회가 되던 1978년에 끝냄으로써 판소리의 보존과 보급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4년 11월 잡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뿌리깊은나무〉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되, 주된 독자를 여성으로 상정한 종합 여성문화잡지로 출발했다. 이 잡지는 한국의 기존 여성잡지와는 달리 여성잡지의 긍정적 가망성을 열어 보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창기는 제국주의 일본의 잔재를 미처 털어내지 못하고 있던 한국 출판물의 내용과 형식에 진정한 근대성과 주체성을 부여한 최초의 출판 언론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출판활동을 통해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한글학회·외솔회·한국박물관회의 회원이었으며, 재단법인 언어교육의 이사를 지냈다.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수오당

 

야외전시장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물부터 조선후기의 문무인석, 생활용품이 다양하게 박물관 주차장과, 수오당 대문 앞쪽에 전시되어 있다. 안태고향을 밝히지 않고, 석탑의 경우 여러 기를 뒤죽박죽 쌓아 두는 등의 아쉬움도 남지만 석조문화재 매니아들에게는 꼭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울러, 체계적인 검증과 조사를 병행하여 옥외 석조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문을 설치하고 무성의하게 쌓아 둔 여러 부재는 각각 분리하여 전시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기대해 본다.

 

입장료 1,000원에 배부른 구경거리가 넘쳐 나는 박물관임에 틀림없다. 아쉽지만 실내 전시물은 제외하고, 옥외 전시석조물 사진을 올린다.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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