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상주시

상주...북장사 마애부도, 마애불두

임병기(선과) 2014. 7. 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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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사 일주문. 하늘로 들어가는 천국의 문 느낌으로, 북장사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눈앞을 스치는 상징물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들렸던 사찰이지만  대부분  답사객들 처럼 복원된 삼층석탑을 찾은 후에는 발길을 돌렸었다. 그런 까닭에 부끄럽게도 마애부도와 마애불이 계시는 줄은 최근에서야 인지 했다.  알고나서도 기회가 있었지만 답사 동선에 누락하여 차일피일 인연 짓지를 못했었다.

 

 

복원 및 이건된 삼층석탑

 

 

상주 인평동 우암산 정상에 도괴되어 있었던 탑으로, 용흥사로 옮겨 관리하였다가, 1998년 북장사 경내로 옮겨 북장사삼층석탑으로 이름을 바꾸어 새로이 복원하여 세웠다. 본디의 부재는 기단 일부, 3층 몸돌 1개, 지붕돌 3개만 남아 있었다. 상하기단에는 탱주와 양우주를, 몸돌 우주를 새겨 놓았다. 옥개석 물매는 깊지 않고 처마의 반전은 희미하다.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전한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좌측 개울 건너 바위 우측 앞쪽에 부도가 보인다.

 

 

부도는 바위면을 다듬어 만들었다. 자연암 남면 중앙에  비신 모양을 새기고 "경암당부도 임인팔월립景巖堂浮屠壬寅八月立"이라는 명을 새겼다. 비신 상부를 호형으로 다듬었고 하부에는 장방형 기단을 마련했다. 그리고 비신 아래에는 원공圓孔이 뚫려 있는데 사리를 안치한 사리공으로 추측된다. 경상도 지방의 마애부도의 작례는 청도 신둔사, 합천 해인사 원당암 등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마애불두는 마애부도에서 우측 계곡을 따라 50여미터 올라가면 길가에 작은 오동 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 좌측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두.  화강암을 평평하게 치석하고 중앙부에 얕은 선각으로 새겼다. 원형 두광을 표시하고 목, 가슴, 양어깨를 나타내었다. 소발의 머리 위로 육계가 남아있다. 미완성 불상의 불두로 생각되며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애불에서 바라본 북장사. 

 

2014.06.14

 

 

 

 

 

 

 

 

 

 

 

 

 

 

 

 

 

 

 

 

 

 

 

 

 

 

 

 

 

 

 

 

 

 

 

 

 

 

 

 

 

 

 

 

 

 

 

 

 

 

 

 

 

 

 

 

 

 

 

 

 

 

 

 

 

 

 

 

 

 

 

 

 

 

 

 

 

 

 

 

 

 

 

 

 

 

 

 

 

 

 

 

 

 

 

 

 

 

 

 

 

 

 

 

 

 

 

 

 

 

 

 

 

 

 

 

 

 

 

 

 

 

 

 

 

 

 

 

 

 

 

 

 

 

 

 

 

 

 

 

 

 

 

 

 

 

 

 

 

 

 

 

 

 

 

 

 

 

 

 

 

 

 

 

 

 

 

 

 

 

 

 

 

 

 

 

 

 

 

 

 

 

 

 

 

 

 

 

 

 

 

 

 

 

 

 

 

 

 

 

 

 

 

 

 

 

 

 

 

 

 

 

 

 

 

 

 

 

 

 

 

 

 

 

 

 

 

 

 

 

 

 

 

 

 

 

 

 

 

 

 

 

 

 

 

 

 

 

 

 

 

 

 

 

 

 

 

 

 

 

 

 

 

 

 

 

 

 

 

 

 

 

 

 

 

 

 

 

 

 

 

 

 

 

 

 

 

 

 

 

 

 

 

 

 

 

 

 

 

 

 

 

 

 

 

 

 

 

 

 

 

 

 

 

 

 

 

 

 

 

 

 

 

 

 

 

 

 

 

 

 

 

 

 

 

 

 

 

 

 

 

 

 

 

 

 

 

 

 

 

 

 

 

 

 

 

 

 

 

 

 

 

 

 

 

 

 

 

 

 

 

 

 

 

 

 

 

 

 

 

 

 

 

 

 

 

 

 

 

 

 

 

 

 

 

 

 

 

 

 

 

 

 

 

 

 

 

 

 

 

 

 

 

 

 

 

 

 

 

 

 

 

 

 

 

 

 

 

 

 

 

 

 

 

 

 

 

 

 

 

 

 

 

 

 

 

 

 

 

 

 

 

 

 

 

 

 

 

 

 

 

 

 

 

 

 

 

 

 

 

 

 

 

 

 

 

 

 

 

 

 

 

 

 

 

 

 

 

 

 

 

 

 

 

 

 

 

 

 

 

 

 

 

 

 

 

 

 

 

 

 

 

 

 

 

 

 

 

 

 

 

 

 

 

 

 

 

 

 

 

 

 

 

 

 

 

 

 

 

 

 

 

 

 

 

 

 

 

 

 

 

 

 

 

 

 

 

 

 

 

 

 

 

 

 

 

 

 

 

 

 

 

 

 

 

 

 

 

 

아래는

2007년 글이다.

 

 

하늘과 경계인가?

 

내가 태어나 최초로 외박을 한 지역이 상주다. 일곱살 무렵 고향 성주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선친의 직장인 점촌으로 향하던중 막차를 놓쳐 우리 고향 어른이 학장으로 계시던 분의 동생이 경영하던 서점에서 하루를 묵은 기억이 남아있다. 마루 모깃장에서 잠잤던 기억으로 미루어 여름이었던 모양이다.

 

그이후 대학 1학년 때 선배를 따라 남장사와 상주 지역 절집을 순례했었지만 북장사는 기억에 없으며, 수차례의 상주 답사 동선에서도 북장사는 제외된 연유를 모르겠다. 이제 그 길을 더듬어 본다.

 

북장사는 충북 보은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 한적한 동네를 지나 천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천주산 이란 이름은 북장사에서 500m 쯤 떨어진 산 중턱에 수미굴이 있고 이 굴속이 밑이 좁고 위가 넓은 천연의 돌기둥이 하늘을 받치는 것처럼 서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북장사로 미루어 동서남북에 사찰을 건립하였을 것이니 바로 갑장사, 승장사, 남장사, 북장사이라고 한다. 다른 가람은 이해가 되는데 승장사의 '승'의 상징은 무엇일까? 그나저나  고갯마루 급커브에 일주문을 세운 연유가 궁금하다.


 

복원된 삼층탑은 상주 인평동  우암산에 있던 탑으로 용흥사로 옮겨 관리하다 1998년 북장사로 복원하여 이전해 놓았다. 옥개석, 삼층 몸돌만 본디의 부재이며 이층기단,5개의 옥개석 받침, 몸돌, 옥개는 한개의 돌이다.  몸돌받침은 2단, 낙수면은 완만하고 추녀두께가 얇다. 여러 부재들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판단하고 있다.


괘불대

 

중정 한켠에 자리한 괘불대다. 북장사에 보관중인 영산회 괘불을 옥외 행사시 걸 수 있는 구조물이다. 북장사 괘불은 영험이 있어 가뭄이 심할 때 노천에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전해온다. 또한 여타 절집 전각 불사와 탱화 조성시 전해오는 파랑새의 전설이 북장사 괘불탱에도 서려있다.

 

평상시에 만날 수 없는 괘불탱과 설명을 문화재청에서 옮겨오니 참조 바란다.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 문화재청

 

 

거친 마본(麻本) 바탕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사천왕(四天王)과 팔부중(八部衆), 십대보살(十大菩薩), 십대제자(十大弟子)가 배치된 영산회 괘불정(靈山會 掛佛幀). 1993년에 배접·수리하여 보존상태는 양호하지만 화면상단 일부에 보수 흔적(가채, 가필)이 엿보인다.

길이 13.2m, 폭 8.07m에 이르는 거대한 화폭으로 중앙에서 화면 가득히 잡아 크게 그린 입상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어깨아래쪽 좌우에는 문수(文殊)와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위시한 10대 보살(十大菩薩)과 4천왕(四天王), 8부중(八部衆)을 배치하고, 머리좌우에는 10대제자(十大弟子)를 그린 군도(群圖)형식의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이다.

 

조선시대 후기 불화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키형태의 광배(光背)를 지니고 있으며 뾰족한 육계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뚜렷한 본존불을 비롯한 각 상들은 얼굴표정이 다소 경직되어 보이긴 하지만, 균형잡힌 신체에 둥근 얼굴과 조화로운 이목구비, 둥그스럼한 어깨선, 각지지않고 둥글어진 광배모서리의 처리 등에서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의 특징을 준다.

 

굵은 윤곽선을 사용함으로써 상들이 다소 경직되어 보이긴 하나 빈틈없이 치밀하고 정교한 필치로 신체의 표현이 매우 분명하며, 활달하고 빠른 선을 구사하여 각 상들이 힘에 차 있다. 또한 장식성 넘치는 정치한 무늬의 표현으로 세련미가 드러난다.

홍색과 녹색 위주의 색조이지만 본존불의 하의자락과 사천왕의 무장한 모습에 밝고 화사한 중간색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장중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본존상의 하의(下衣)와 대의(大衣)자락, 좌우 협시보살과 사천왕의 복장에 사용된 채색과 금색무늬는 화면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뿐만아니라, 무거워진 화면에 화려함을 보여준다.

 

17세기 중반이후 크게 활약했던 학능(學能)스님의 지도아래 그려져 18세기로의 이행과정의 화풍을 보여주는 이 괘불도는 조화로운 신체 각부의 표현과 밝고 선명한 채색을 사용하여 나타낸 다양한 꽃무늬의 장식성 등이 돋보이는 17세기 후반의 수작으로 괘불 비교 자료로 가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당나라 승려가 찾아와 괘불을 그리겠다고 하면서 3일 동안 출입을 금하라고 했다. 한 승려가 궁금해서 엿보니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엿본 것을 알게 된 파랑새는 사라지고 가까이 가서 그림을 살펴보니 어깨부분이 미완성이었다고 한다.



 

분주히 대패를 움직이는 목수들에게도 죄스럽고, 새로히 불사하여 휘황찬란한 극락보전도 참배도 내키지 않아 내려와버렸는데, 지금 답사기를 위해 자료를 검색중 극락보전에 1676년(숙종 2)에 조성된 거대한 목조 아미타 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으로 건방진 심성 반성도 해야겠지만 문화재청에도 상주시청에도 자료가 없었다. 비지정인가? 왜 비지정이지? 51년만에 너무 늦게 찾아온 나의 업보려니...

 

이런 이런!!!!!!!!  절집 뒤쪽에 마애불도 있었구먼!!!!

 

200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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