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익산시

익산...금강관음사 석불좌상

임병기(선과) 2014. 4. 1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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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금강동 660번지. 들판 가운데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금강 관음사. 인기척에 나오신 스님의 친절함에 놀라웠다. 방문객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고 싶은 듯 문화재 지정 등의 석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주형거신 광배 형의 화강암에 새겨진 승상? 지장보살상? 민초들은 미륵불로 모신다고 한다. 광배에는 화염문이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고깔처럼 보관을 쓰고 있다. 귀는 짧고 얼굴에 비해 턱이 길다. 반달형 눈썹에 코는 훼손되었고, 긴코에 입술은 도톰하여 육감적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두손은  가슴에 모으고 약합을 들고 있는 듯 하다. 상호가 강조 되었고 상반신에 비해 연화좌 위에 앉은 하반신이 빈약하다.  불상 후면의 볼록한 마치 아기를 업은 듯한 형상에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 온다.

 

 

금강관음사 이전에는 부처당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당堂, 즉 민간의 당집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관음사 석불입상은 민간에서 모셨던 불상으로 추측된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가 아닐까?

 

 

금강관음사 석불좌상돠는 약간 차이가 있으나 석주형 민불은 광주민속박물관 십신사지 석불, 화순 벽나리, 제천 한산사 등에서 작례를 확인할 수 있다.

 

 

금강관음사 석불은 달빛에 물든 이야기를 익산시청 홈페이지에서 발췌했다.

"옛날 어떤 스님이 익산을 돌아다니며 시주미를 탁발하고 다녔다.  그러던중에 어떤 집에 이르렀다.  집 주인은 몹시 인색 할 뿐 아니라 살림도 구차하였다.  탁발승에게 인색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쌀을 주지 않고 야박하게도 재를 퍼주면서 스님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다. 이에 며느리는 매우 난처했다. 그리하여 짐짓 시어머니 분부대로 재를 갖다주는 척하다가 낌새를 보아 살짝 쌀을 훔쳐서 스님에게 갖다 바쳤다.

멀찍이 서서 집안 동정을 살피고 있던 스님은  며느리의 더없이 착한 거동을 보고 매우 감동하였다. 그리하여 가난한 며느리의 어진 아음에 보답하려고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보아하니 매우 박복하게 사시는 모양인데 아주머니의  착한 마음씨에 보답하려고 하니 소승을 따라와 주시오."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며느리가 어정쩡한 태도로 물었다. "아무 말 묻지 말고 잠자코 따라와만 주시오. 그러면 복문이 열려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며느리는 스님의 무게 있는 대답에 더는 의심할 마음이 없어, 어린 아이를 등에 들쳐업고 스님의 뒤를 따라나섰다. 한참 가다가 스님이 이윽고 말했다. "소승의 뒤를 따라오되 단 꼭 지켜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옵니까?" 며느리가 물었다.

"목적지에 완전히 이를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됩니다. 만약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불행하게 됩니다." 며느리는 이에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스님의 뜻을 좇아가리라 하였다. 그들은 이윽고 금강리 앞 관음사 근처에 이르렀다. 이 곳은 당시에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큰 강이었다.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걸어갔다. 그러나 마음씨 고운 그 여인은 행여 빠져죽지나 않을까 하여 더럭 겁이 났다. 조마조마 애타는 마음으로 강을 건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결국 며느리는 스님의 가르침을 어겨 돌이 되어버렸다. 이 돌은 하나의 부처로서 등에 아이를 업은 부인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201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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