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2005.05.28(선바위,남이포, 연당리 석불) 사진:2013.07.07
봉감을 거쳐 서석지로 향하는 도중 칼과 같은 선돌이 보여 안내문을 읽어 내려간다. " 남이포와 선바위에는 남이(南怡)장군에 얽힌 전설이 이어져 내려와 더욱 흥미롭다. 옛날 운룡지(雲龍池)에 살던 용의 아들인 아룡과 자룡이 역모를 꾸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용맹과 지혜가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해 한동안 토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정에서는 남이 장군을 보내 이들을 무찌르게 했다.
영양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에 선바위가 있으며, 立巖, 船巖,仙巖,禪巖의 다양한 의미만큼이나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그런 지형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흉내(?)내어 **구곡으로 칭해지며, 또한 중국의 소상팔경을 모방하여 **팔경으로 불리워진다. 어쩌면 문화의 모화사상, 사대주의의 발로인 셈인데 선바위와 남이포를 포함 영양에도 팔경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과 달리 남이장군은 무속 신앙에서 효험있는 장군이다. 단종임금,최영장군,임경업 장군 처럼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모셔진 사당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소원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민초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어찌 영양고을에서는 남이장군의 공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걸까? 혹 무속신앙의 영산 일월산신에게 긋빨에서 밀려서는 아닐까?
잡다한 생각 버리고 연당마을 초입의 석불좌상 앞에 달구지 고삐를 당겼다.
서석지가 있는 연당리 마을 길가 전각에는 목,어깨에 상처를 입고,큼직한 약합을 든 약사여래불이 계신다. 얕은 삼도지만 통일신라 이후 보이는 당당한 어깨의 석불은 제법 균형 갖춘 대좌와 주형거신광배가 있으며 흔치않게 조성시기가 889년으로 새겨진 명문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토속에 습합된, 종교적 대상이 아니라 민간신앙화 된 미륵불처럼 보인다. 그런 흔적은 불상과 어우르진 금줄, 작은 함속의 기자석으로 짐작할 수 있다.
건너편 당산목에도 금줄이 남아 있어 연당리 당산은 성주 법수사지의당산+당간지주, 호남 여러 고을의 장승+미륵처럼, 약사여래+남근+당산목이 어우르진 토속화된 부처임에 분명해 보인다.
아마 양반문화의 대표격인 유명한 정자인 서석지로 인해 조선조에는 무척 고생이 심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독백일까?
대좌
약합을 들고 계신 약사여래불이다.
문화재청 설명문을 보자.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마을 한가운데 임시로 지어놓은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석불좌상이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머리와 눈부분이 깨져 있고 광배가 3조각으로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광배 기자석? 2013.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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