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상무주암 필단사리탑

임병기(선과) 2013. 7. 6. 08:01
728x90

 

 

 

영원사에서 상무주암으로 향하는 산길 초입의 늘 열려 있는 사립문. 마음을 가다듬고 산문에 들어오라는 암시가 아닐까? 일주문에 들듯 삼배의 예를 갖춘 후 마음의 끈을 동여 매고 약 1시간여 소요되는 순례길에 들었다. 은근히 걱정되는 나와 달리  한 사람은 목소리에 힘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길이 개울이고 개울이 길이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뭐 있을 거나?

 

 

산길. 초여름이지만 산아래 마을 에서는 벌써 낙화한 봄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적한 길.  동행한 이의 발걸음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몇 번을 고개를 돌려야 했다.

 

 

질긴 생명력

 

 

석이 버섯

 

 

가슴이 트인다.

 

천황봉인가?

 

봐도 알지 못하는 중생 그래서 더 즐거웁다면 자포자기겠지?

 

 

이태, 이동주.조정래가 파노라마 처럼 스쳐간다.

 

 

세상이 좋아진 것인가?

페친이 되어 언제라도 소통이 가능한 지리산 시인 이원규님의 시 한 편 감상.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 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마지막 숨을 고르기 위해 마련 해 둔 터

 

이곳이 상무주암을 찾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휴식의 공간인 듯 하다.

 

"아니 온 듯 다녀 가소서"

 

작은  팻말  하나가  가슴을 적셨다.

 

 

폐가처럼 보이는 해우소를 돌아서니 상무주암이 반긴다. 놀아가면서 쉬어 가면서 즐겨가면서 쉬엄쉬엄 1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뛰어 가고 싶었지만 탐라의 민가 처럼 문앞에 걸린 긴 빗장에 기가 팍 죽었다. 역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선방임을 재확인하였다.

 

 

암자 전방 지리산 연봉

 

 

상무주암. 석축

 

나의 순례 목적은 상무주암 필단사리탑 답사이지만 이 길은 칠암자 순례길이 되고 남원 실상사까지 연결 되는 길이다. 사진 상단의 방형의 구조물은 석간수 이다. 현재는 암자 아래 농작물 재배와 등산객의 목을 축이는 목적으로 근자에 조성한 듯 보인다.

 

금명보정스님(1881~1933)의 상무주암 시에는 "정상옥파천불은庭上玉波天不隱 즉 마당의 우물은 하늘이 숨기지 않았고" 라는 귀절이 보인다.  추측컨데 축대 아래 석간수는 시구절의 우물은 아닌듯 하다. 암자내에도 우물이 있을 텐데.

 

 

 

 

마천면 삼정리 상무주암.  금대암.칠불선원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수행처로 회자되고 있다. 풍수에 문외한인 어느 누구의 눈에도 길지임을 보여주는 터에 자리 하고 있다. 암자를 감싸고 있는 3면과 탁트인 전망.  봉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지만 나의 한계를 어찌하겠는가?

 

상무주암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이 상무주암에서 〈대혜어록의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 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는 구절을 보고 적극적인 보살행을 지향한 수행처이며, 고려 고종(1213~1259)때 각운스님 역시 상무주암에서 〈선문염송설화〉 30권을 저술한 암자라고 한다. 근자에도 백용성스님.혜암스님, 청화스님,인홍스님이 머물렀으며, 현재는 현기스님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우담 정시한의 산중일기 1686년 윤4월 14일. 상무주암에 유숙한 기록이 남아 있다. "천인암의 능연.추우.지웅 스님등이 왔다 갔고 사철 수좌도 다녀 갔다. 오후에 다시 윤판옥으로 옮겨서 묵었다.

 

머무름이 없는 자리. 그러면 상上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고의 경지? 아니면 산자락 아래 하무주암이 있었을까?  참 궁금한 것도 많은 중생이다.

 

 

상무주 현판 글씨는 경봉스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빗장 너머로 사진 촬영중에 비구니 스님(공양주 보살?)이 나오시더니 처사님 사진 촬영 금지 입니다 라며 나지막히 말씀하신다. 화를 내지 않은 목소리에 얼마나 미안하든지..., 등산객, 나같은 답사객의 등살에 조용한 선방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보였다. 그러시더니 빗장 앞에 가리개를 쳐 상무주암 편액마져도 가린다. 아~~~

 

 

필단사리탑. 암자 출입이 제한되어 멀리서 촬영하는데 만족했다. 탑은 고려 말의 고승인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통 속에 떨어졌다는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전한다.

 

 

위에서 인용한 보정선사 시에 석탑에 대한 구절도 보인다.

 

리변주탑귀난지離邊珠塔鬼難知 담 옆의 구슬처럼 작은 탑은 귀신도 알기 어렵네.

위의 문장으로 보아 필단사리탑도 담장위가 아닌 담장 아래에 자리했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상무주암 분위기와 어울리게 석축 가장자리에 탑을 올려 두었다. 중정이 좁아 불가피한 위치 선정일까? 봉정암, 지리산 법계사 그리고 경주 남산의 바위를 기단 삼아 천년을 변함없이 서 있는 석탑들이 스쳐간다.

 

 

필단사리탑.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원래 위치는 확인되지 않지만 석축위에 방형 기단을 두었다. 단층기단 초층 탑신에는 양우주가 희미하게 조출되었다. 2,3층 탑신은 결실, 상륜에는 노반과 보주가 일 석으로 보여진다. 옥개석 층급 받침은 1~3층 모두 3단이며 낙수면 물매는 깊지 않다. 우동은 높고 반전이 경쾌하다.

 

 

 

 

참선대.

 

 

경망스런 행동이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사진을 내려 놓지 않겠다.

 

헛된 망상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교만함의 경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잘난 놈이다!!!!!!!

 

지멋대로 행동하고 나불거리는...

 

 

상무주암...다송자 금명보정 선사(1881~1930)

 

등암횡거일형추登庵橫擧一衡推 암자에 올라서 이리지리 살펴보니

만리군산사국기萬里群山似局기 만리에 여러산은 바둑 판 같네.

정상옥파천불은庭上玉波天不隱  마당 위의 우물은 하늘이 숨기지 않았고

리변주탑귀난지離邊珠塔鬼難知 담 옆의 구슬처럼 작은 탑은 귀신도 알기 어렵네

월생수국용개안月生水國龍開眼 물나라에서 달 뜨니 용이 눈 뜨고

무일운강야벽지霧溢雲江野闢池 구름 강에서 안개이니 들에 연못 열리네

입정고승무주착 入定高僧無住着 선정에 든 고승은 집착이 없으니

목우선옹멱우시 牧牛禪翁覓牛時 목우자 스님이 소를 찾을 때 되었네

 

2013.06.01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