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사에 관한 글은 여러번 올렸었다. 여기에서는 현재의 모습 사진, 자료는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으니 우리님들 답사길에 참고 바랍니다.
부인사 당간지주...광해대왕님 사진
많은 답사객들도 부인사 당간지주는 생소할 것이다. 나 역시도 두어차례 탐문했지만 아직 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팔공산 주면 절집에 온건한 당간지주는 동화사에만 남아 있고 송림사, 부인사 당간지주는 훼손된 상태이다. 부인사를 답사한 님들은 알겠지만 입구 포도밭에 위치하여 겨울철이 아니면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부도전
부도전 앞에서면 우리 아들놈 초딩시절이 생각나서 웃음짓는다. 2003년 초등생이던 아들과 둘이서 다녀온 글의 일부이다.
넓은 주차장 옆 석종형 부도와, 이형의 팔각 원당형의 부도가 우릴 반긴다. 석종형 부도는 큰 특징이 없는 조선조의 형식이지만 팔각형의 부도는 매력이 절절 넘치는 부도이다. 복련이 새겨진 하대석 모서리에는 영암사지 금당 기단의 사자새끼 같고, 강아지를 닮은 사자가 새겨져 있고, 얕은 중대석에는 이름 모를 동물과 원성스님 시집 '풍경' 속의 천진난만한 동자를 닮은 동자상이 두 팔을 들고 서있다.
부인사 사역 서편 골짜기에 있던 부도를 도난 사건 후 부인사 입구로 옮겨 복원하였다. 탑신에 은통당隱通堂이 새겨진 조선시대 부도로, 통일신라의 팔각원당형을 충실히 모방한 작품이다. 기단부·탑신부·옥개부로 구성되었으며, 상륜부는 근래에 복원하였다. 팔각 탑신석은 상하의 각을 오무린 배흘림이 분명하다. 옥개석은 상면에 우동과 기와골을 모각하고 우동의 끝에는 망와형의 귀면을, 아래에는 부연을 모각하였다.
하대석은 방형 지대석 위에 완만한 연화문을 배치하고, 그 둘레에 연화문과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 모서리에 동물상․동자상을 배치하고 각 면에는 화문을 양각하였다. 상대석은 윗면을 넓게 하고 주위에 앙련문을 조각하였다.
은통당 명문
입구 석축으로 미루어 옛 가람의 흔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옛부인사 중심 영역의 석축으로 추정된다.
부인사는 1993년 이후 전각 신축 불사를 통해 가람의 형태가 크게 변화된 모습이다. 현재 삼층석탑과 요사 건물이 있는 곳이 과거 부인사의 중심 사역이었으나, 현재는 구 사역(유적지)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신축 당우들이 자리하고 있다. 곧 전체적으로 사역의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된 모습을 하고 있다.
석조부재 동서삼층탑
창건 심하도다. 몽고군이 환란을 일으킴이여! 그 잔인하고 흉포한 성품은 이미 말로 다할 수 없고, 심지어 어리석고 아둔하기는 또한 짐승보다 심하구나. (그들이) 어찌 천하에 (불상을) 공경하는 것을 알겠으며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 있던 불상과 경전은 모두 불에 태워져 버렸습니다. 이에 부인사에 소장되어 있던 대장경 판본도 또한 남김없이 태워져 버렸습니다. 아, 여러 해를 걸려서 이룬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버렸으니, 나라의 큰 보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서탑
부인사 서탑은 본래 쌍탑이었으나 1964년에 서탑만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즈음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하기단과 갑석은 4개의 돌로 짜여졌으며 갑석상면에는 괴임을 각출하고 면석에는 탱주 하나와 양우주를 새겼다. 상기단은 탱주와 우주가 새겨진 면석을 4매의 판석으로 짰고, 갑석 아래에는 부연을 나타냈으며 상면에는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각층의 옥신과 옥개석은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었으며 옥신에는 우주를 새기고 옥개석은 하면에 5단의 옥개받침과 상면에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흐르다가 반전하였다. 꼭대기에는 찰주를 삽입했던 방형 노반만 남아 있다.
기단 탑신
동탑
서탑과 쌍탑으로 추정한다면 복원에 문젯점은 없는가? 서탑은 2기단으로 지대석과 하기단이 하나의 돌로 4개 부재가 결구 되어 있다. 그런데 동탑은 기단을 3기단으로 조성하고 탱주도 위로부터 1:2:3으로 모각하였다. 3기단으로 조성된 석탑은 구례 연곡사에도 남아 있다.
동.서탑은 1964년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복원되었다. 당시에도 동탑 부재는 이미 다른 전각 복원의 부재로 활용되어 서탑만을 복원하였으며 근자에 현재 모습으로 조성하였다. 서탑은 상층 기단 일부만 본래 석탑 부재이다.
동서삼층탑
많은 자료에는 쌍탑이라 했건만 우리의 장인들이 이렇게 기단을 달리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증을 거쳤겠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소맷돌
석등과 배례석
배례석
옛대웅전 앞에 위치한 팔각원당형 석등이다. 석탑과 마찬가지로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수습된 부재를 복원하였다. 석등은 현재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화사석은 인근에 있던 다른 부재를 복원한 것이다. 석등은 추녀가 길고 얇으며 곡면도 유려하여 경쾌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전한다.
석등의 기단은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복판의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기단부의 측면에는 각 면마다 2개의 안상이 음각되어 있다. 상면에는 3단의 팔각 받침을 만들어 간주석을 받도록 했다. 상대석은 복판 중엽의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상면에는 3단의 괴임을 각출하였다. 옥개석은 상부에는 연화문 띠를 모각하였다.
화사석은 다른 석등 부재로 크기가 작아 보인다.
삼광루 대웅전
대웅전은 현재의 위치까지 포함하면 전부 세 차례 자리를 옮겼다. 최초의 대웅전 위치는 현 부인사 남쪽의 대 축대와 접한 곳으로, 부인사 3차 발굴조사보고서에 탑전 건물지로 명명된 지역이다. 두 번째 위치는 그보다 북쪽으로 이동된 현 신축 사역으로 오르는 계단지와 접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4~5차례 건물 변화가 있었음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부인사의 대웅전 위치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되어 건립되는 양상을 보인다.
부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승려들의 시장이 자리했던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근자에 대구시와 동화사를 중심으로 매년 10월 다양한 행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승시가 열리고 있다.
2012년 개최된 승시의 스님 씨름대회...인드라망 깍쟁이신랑님 사진
선원 현음각(범종각) 명부전과 석등
부인사 근처 이름이 전하지 않은 절터에서 가져온 석등이다. 이석등은 화사석이 편팔각형의 유례가 없는 석등이다.하대석·간주석·상대석·옥개석은 본래의 부재이지만 화사석과 상륜부는 새로운 부재로 복원하였다
장방형 지대석의 측면에는 2조의 안상을 모각하였고, 상면에는 연화 받침으로 장식되어 있다. 앙련 형태로 장식된 상대석은 상부에는 3단의 받침이 각출되어 있고, 하부에는 2단의 부연과 중앙에 간주석을 꽂기 위한 홈이 있다.
화사석은 파편을 통해서 복원한 것으로 넓은 측면에는 장방형 화창을 2개, 좁은 면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옥개석은 정상부에 편팔각의 홈과 괴임을 만들었고, 괴임 둘레에는 연화문대를 조각하였다.
팔각화사석. 마치 두 개 화사석을 합쳐 놓은 모습처럼 보인다. 절터에서 깨어진 상태의 조각들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산신각 숭모전
숭모전은 탑이 있는 구 사역의 서쪽에 새로 조성한 전각이다. 계단을 갖춘 높은 축대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내부에는 선덕여왕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매년 4월 숭모제가 봉행된다. 숭모전은 본래 남쪽의 대 축대 아래에 위치하였는데 선덕여왕의 진영을 봉안하던 성덕묘 건물을 허물고 이 자리에 신축한 것이다.
2013.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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