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대구...송정동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3. 1. 16.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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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답사기를 가져왔다.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달구벌 사람이라도 잘 모르는 송정동 석불입상은 팔공산 순환도로 파계사 사거리에서 동명 방향의 첫 마을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마을입구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요란한 색깔의 삼각 깃대가 어지롭게 나부끼고 있다.마치 몽고초원을 누비는 징기스칸 군영의 군기처림 눈에 거슬렸는데, 기막히게도 유퉁이라는 연예인이 운영하는 소머리국밥 집이었다. 우리민족이 몽고계라지만 얼마전에 20세의 몽고 마누라 사이에 아이를 얻었다는 유퉁이라는 친구는 유난히 몽고인을 닮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친구를 욕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문화에 대해서 편향되고 비타협적인 내눈에는 그냥 확 없에고 싶었다. 그렇지 않은가? 2차 몽고군의 침입으로 국토의 유린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초조 대장경판을 소장중 불에 탄 부인사가 바로 지척에 있는데, 코앞에서 몽고풍 분위기로 외관을 치장하여 요란하게 장사를 해야만하겠는가?

 

사진은 오래전의 모습이다. 지금은 돌각담이 높아지고 앞부분이 잘 정돈 되어 있는 송정동 석불 역시 코딱지 만한 입구 입간판 뿐이지만 정확히 왕건이 견훤에게 대패한 동수 전투 뒷산 즉 왕산 뒷자락을 정면으로 보고 있다. 광배와 석불이 하나의 돌이나 두광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며 정면에만 주추 4개가 있어 인공 석굴이 아닐까?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혼자서 꿈(?)꾸고 있는 중에 체육복을 입은 비속비승 모습의 스님이 다가오셔서 15년전 돌무덤에 묻혀 목만 내놓고 있던 석불을 자기자신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셨단다. 석불입상이 세동강 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스승이자, 국회의장을 역임한 모인사가 큰 인물 탄생을 방해하기 위해 저질렀다는 설, 예전에 대홍수로 세조각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했지만 정설은 아닌 듯 하다.

 

머리의 모양은 소발이며, 육계와 긴 귀,  백호, 삼도를 새겼으며, 통견의로 옷주름이 간결하게 표현되었고, 가슴 앞에 모은 양손은 훼손이 심해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주변에 흩어진 석재로 보아 암자, 사찰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으나 철저하게 폐사가 된 탓에 이름은알 수 없으나 옷주름의 형식 등으로 신라하대에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정부의 지원도 없으며, 찾는 신도도 많지 않아 주로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사용되어 스님의 마음이 편치 않지만, 15년 전 불두만 내놓은 상태에서 나무하러 가는 초동들이 작대기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던 시절 보다는 좋아졌다며 쓴 웃음 지으신다.

 

2005.11.20

 

 

2013년 많이도 변했다. 석불 입상 까지 차랑 접근이 가능하며 옆에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예전에는 팔공산 주변 문화재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잘 찾지 않으며 단체 답사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옛님이었는데 근자에는 잊혀진 옛님은 아닌 듯 하다.

 

 

송정동 석불입상의 수인은 어떠하였을까? 일견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석불입상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자료를 찾아보면 봉화 동면리 마애불과 영양 출토 비로자나 입상. 원주 수항리 마애삼존불 정도이다.

 


 

 

 


봉화 동면리 마애비로자나불입상...옛님의 숨결 707 참조

 

 

 

 

 

문화재청 설명을 보자. 불상은 판상으로 생긴 화강암을 이용하여 부각한 것으로서 훼손과 풍화가 심하기는 하나 단엄하고 원만한 조각미를 지니고 있다. 깎은 머리인 소발에 큼직한 육계와 길다란 귀를 가지고 있으며, 윤곽이 원만하여 온화한 상호를 나타내고 있다. 법의는 통견의로 몸매를 더욱 풍만하게 표현하고 있다. 양손은 가슴 앞에 모으고 있는 듯하나 훼손이 심하여 알 수 없다. 사실적이고 풍만하면서 균형잡힌 조각기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다.

 

 

석불입상에서 바라본 왕산. 동수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몸을 숨긴 산으로 후에 왕산으로 이름 붙여 졌다. 왕의 복장으로 갈아 입고 장렬하게 전사한 신숭겸 유적지와 가묘가 산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저 산아래로부터 대구 시내 왕건의 도주로에는 훗날 왕건이 고려 개국후 명명한 지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쨓든 송현동 석불입상은 그날의 일들을 모두 목격하지 않았을까?

                                                                          201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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