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무안군

무안...승달산 목우암

임병기(선과) 2013. 1. 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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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장승. 목우암은 법천사의 산내 암자이었다. 앞서 소개한 사찰 장승을 거쳐 목우암에 이를 수 있다. 창건 설화가 아니더라도 사찰명에서 십우도를 연상케하는 절집이다.

 

 

전통사찰관광정보의 목우암 창건기를 보자. 목우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원나라 임천사(臨川寺)의 중 원명(圓明)이 바다를 건너와 승달산에 택지하고 풀을 엮어 암자를 지었다고 세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암자가 목우암으로 추정한다. 그 후 <금성지(錦城誌)>의 기록에 의하면 당대, 혹은 원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인종, 의종 연간에 중국 임천사의 스님 원명이 세웠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원명은 고려시대 때 원명국사로 보고 있다. 과거 목우암은 법천사의 산내암자였으나 법천사가 폐사되면서 목우암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고, 주변 일대의 토지를 모두 소유하게 되었다. 그 후 법천사가 다시 중건될 때는 그 지역만 별도로 목우암에서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삼존불은 법천사에서 옮겨진 것으로 현재까지 그대로 목우암에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원명 스님이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이 이것을 이상이 여겨 암자에 가 보니 계속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발자국을 따라와 절을 지어서 이름을 목우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원명 스님이 이 암자를 풀로 엮어 지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절의 배치는 요사, 목우암, 축성각으로 단촐하고 소박하다.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목우암 현판이 걸린 전각에는 ㄷ字 구조로 중앙에 불단을 마련하고 전면에는  툇간을 내고 좌우에 날개채를 달았다.

 

 

대웅전 측면. 마치 경북 북부지방 반가의 사랑채 분위기다.

 

 

강희 20년(1681년) 숙종 7년 명문이 남아 있다. 법천사에서 옮겨온 법당 목조아미타불도 조선후기 16~17세기에 조성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석등도 법천사에서 옮겨 왔다면 삼존불과 함께 법천사에서 동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기단부는 결실되었으며 팔각 간주석, 문양이 보이는 중대석, 화사석을 두었다. 화사석에는 4개 화창을 내고 옥개 모서리에는 귀면상을 새겼다.옥개석과 하나의 부재에 조성한 상륜이 마치 또 하나의 옥개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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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기단위의 석주는 옛 목우암 법당 석주였을까?  그렇다면 丁字형 전각?. 정자형 전각은 순천 선암사. 화순 쌍봉사. 여수 흥국사 관음전에서 보이는 전각의 특징인데 관련이 있다면 임란시에 법천사에서 아미타삼존을 모셔오기 전에는 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이었을까?

 

 

석탑 몸돌?

 

 

아미타불과 좌우의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삼존불은 목우암의 ‘ㄷ’자형 법당안에 봉안된 아미타삼존이다. 본존불은 앉아 있는 상으로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상호는 원만상으로 조선전기에서 나타난 온화하고 부드러운 면이 보이고 있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결하여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이 취하는 통인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오른쪽 어깨에서 몇가닥의 의문이 등뒤로 넘어가는 형식이며 배아래에서는 U자형이 나타나고 있어 조선시대에 특징적으로 표현되는 기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가부좌를 취하였는데 비교적 그 폭이 넓게 벌어진 편이며 어깨에서부터 내려온 법의 자락이 무릎 중앙에서 겹쳐지고 있다.

 

양협시불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화려한 천의로 장식되였는데 대세지보살은 양팔에 팔찌를 끼고 왼손바닥에는 뚜껑이 달린 상자를 가볍게 쥐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왼팔을 들어 천의자락을 걸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길게 늘어뜨린 정병을 들고 있다. 목조삼존불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가슴에서 보인 U자형의 옷 주름이라든지 그 사이에서 연꽃형의 내의자락은 조선초기 양식에 가까우며 더구나 어깨의 부드러운 선,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아직은 잔잔한 미소가 감돌고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는 수작에 속한다 하겠다. 더구나 아미타 본존불에 관음과 대세지의 보처가 서 있는 분명한 예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조성시기는 조선시대 17∼18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신장탱의 화기가 분명하지 않아 조성시기가 긍금하다.

 

부도전

 

조선시대 후기 석종형 부도 5기 부도로 미루어 법천사는 조선 후기에 사세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날씨가 따뜻했으면 남도의 숨은 많은  옛님들을 만나고 왔겠지만 날씨 뿐만 아니라 동행한 님의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어서 목우암 부도전을 끝으로 겨울 남도 답사를 마쳐야 했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불편한 몸으로 함께한 목포 이홍식님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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