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무안군

무안...법천사 석장승

임병기(선과) 2013. 1. 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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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창건은 백제시대 553년(성왕 30)에 덕이 또는 덕예조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혹은 725년(성덕왕 24)에 서역西域의 금지국金地國에서 온 정명淨明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1090 ~ 1141)이 이곳에 와서 공부하자 제자 500여명이 찾아와 함께 수도하며 절을 중창하였는데 처음에는 산 이름이 영취산이었으나 이때부터 승달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1662년(현종 3)에 영욱님이 중창하였다.

 

한편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법천사는 원명국사가 주석하던 곳”이라는 등의 기록이 있고 「범우고」와 「가람고」에도 역시 절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절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896년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절이 거의 폐허화되었으나 1913년에 정병우가 암자를 지으면서 법등이 이어졌고 그 뒤 곽활연스님이 주석하면서 중창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70년 이후에는 법천사 옛 터에 중창을 하면서 활연 스님의 제자인 강지원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할머니 장승

 

법천사와 목우암 갈림길 못미쳐 자리한 장승으로 여느 장승처럼 투박한 촌부의 모습이다. 사찰 경계, 수호신 역활보다는 절집을 찾아오는 노보살을 달래주려는 인상이다. 민초들도 하나 둘 돌을 던져 벗은 하체를 가리우고 성황당 조산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내새끼, 네자식, 우리마을 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건만 이제는 아득한 옛이야기로 전해온다.

 

 

외호장승이 아니다. 할머니 장승은 절집을 드나드는 보살님의 친구이며, 사바의 삶에 지친 민초들의 휴식처 이자 하소연을 묵묵히 받아주는 공간이 었다.

 

 

동그란 눈 잘생긴 주먹코 작은 입에는 미소가 희미하다.

 

할아버지 장승

 

아들을 낳기 원하는 사람들이 장승에 고사를 지내거나 장승코를 갈아서 깨끗한 물에 타 마시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무렵 원명스님이 법천사를 중창할 당시에 함께 세워놓은 장승으로 전한다.

 

긴 세월을 동고동락하였으니 할머니 장승을 닮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민초들에게 코를 내어 주고도 웃음을 잃지 않은 의연한 우리 할아버지 장승이다. 코가 잘 생겼던 모양이다.

 

 

어이!! 선과 놈아!!! 그냥 갈거냐? 지금 가면 언제 오겠냐?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가거라!!!  그렇게 말을 걸어 오는 듯 하다. 막걸리 한 잔 드리면 지게춤을 추면서 육자배기 한 자락 절로 하시겠지!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저미어 오는 걸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아 가고 있지는 않은지......

 

 

 


 

 

석장승과의 대화2...이종암

 

장승도 짝으로 세상에 온다는데

그대 짝은? 당신은 남자인가

멀리서 보면 남근 생김새라

남자겠구먼, 맞는가?


어라, 네 이름에도 돌이 들어있네

이라, 같은 돌이니

이리 와서 짝이 되어 같이 놀아보세


쓸만한 말씀 한 덩이 들려주려나?


아니, 잘 부르는 네 노래 듣고 싶네


간절한 사람들에게 다 떼 주고 없는

그대 귀와 코 빌려 나 노래 하려네

세상의 맺힌 마음들 찾아가 손잡고

술술 풀어내는 내 노래 부르고 싶네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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