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무안군

무안...총지사지 석장승

임병기(선과) 2013. 1. 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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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사는 신동국여지승람.가람고. 범우고에 기록되어 있지만  20세기초 발간된 사탑고적고에는 폐사지로 설명되어 있어 19세기에 향화가 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지누님의 글을 보자. "총지사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밀교적 성향이 강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의 법천사가 신라 성덕왕 때인 725년 서역 금지국의 정명스님이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총지사도 그 무렵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목우암은 고려 원종 5년인 1264년 원나라의 원명스님이 세웠다고 하는데 총지사의 소 한 마리가 그곳으로 건너 온 꿈을 꾸고는 세웠으니 이미 그 이전에 총지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간다라인 금지국과 원나라의 스님이 이곳을 찾은 까닭은 서해안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또 산 이름이 승달산僧達山이 된 것은 원명의 제자 500여명이 그를 찾아 이곳으로 와서 깨달음을 이루었기에 붙여진 것이니 당시 서해안 지방과 다른 나라들 간의 교류를 어림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총지사의 창건은 모호하지만 고려 현종 7년인 1016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폐찰이 된 것을 다시 복원하였으나 순조 10년인 1810년 무렵에 또 불타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까닭이 명당으로 소문난 총지 뒷산에 충청도 현감을 지낸 임면수가 아버지의 묘를 썼기 때문이다. 절 뒤에 묘를 쓰자 스님들이 이를 반대했고 그러자 임씨 문중에서 절집을 불태워 버린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것 또한 반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할아버지 장승

 

절집은 폐사되었지만 절입구에는  두 기 장승이 남아 있다. 이름하여 총지사지 할아버지 장승은 화강암에 특별한 장식없이 자연석을 그대로 살린 민머리와 이마, 눈꼬리가 올라간 커다란 왕방울 눈, 넓적한 주먹코,  꼭 다문 작은 입, 턱에는 외수염을 조각해 두었다.

 

 

구부정한 허리와 굽은 등이 퍽 인상적이며 몸아래가 묻혀 있어 금방이라도 훌쩍 뛰어 오를듯한 자세다. 일견 제주도 돌하르방 분위기다.

할머니 장승

 

할머니 장승도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조각했다. 둥근 눈. 높은 코. 일자로 다문 입으로 선한 표정이다. 눈썹 사이에 백호상이 새겨져 있어 그모습이 미룩불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장승 앞에는 민초들의 기도의 흔적이 보이며 제단이 남아 있다.

 

 

장승의 제작연대를 밝힐 수 있는 명문이나 근거 기록이 불분명하여 정확한 시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총지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전하는 『면성지』(1925)에 의하면 헌종 7년(1666)이 사찰이 중건되었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사람 모습의 장승이 출현하는 예를 미루어 볼 때 이 장승의 제작연대도 1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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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는 다라니陀羅尼를 말한다. 진언眞言이나 주呪를 지송持誦하여 법을 구하는 것이며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옴 마니 반메 홈이다. 그러나 한문을 그대로 옮기면 모든 것을 다 지녔다는 뜻이 되니 섬뜩한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면 잃게 마련인가. 그 찬란했던 절집이 이제는 흔적조차 희미하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섶에 서 있는 돌 벅수가 아니면 희미한 축대의 흔적에 매달리거나 주춧돌 자리를 뒤지는 것으로 가늠하고 말아야한다."...이지누의 절터 톺아보기 중에서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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