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무안군

무안...성남리 석장승

임병기(선과) 2013. 1. 5. 07:52
728x90
728x90

 

 

 

무안읍 성남리 남산공원. 주민들의 산책 장소와 더불어 조선시대 선정비림과, 독립유공자비,한국전쟁 참전유공자비, 충혼탑 근대역사의 단편을 살펴 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남산공원 선정비를 지나 등산로 입구 좌우에 자리한 석장승이다. 원래 위치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안내문에 성남리 무안읍성 남문밖 후청마을에 세웠던 장승으로 설명되어 있다. 장승으로 인해 노인들은 아직도 장승백이 마을로 부른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오는 잡귀잡신을 막아주는 벽사, 마을막이 수문장, 마을사람들의 소원성취를 이루어 주는 수호신 기능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1984년 5월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남리 장승은 현재 마을장승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무안읍성 남문 즉 성의 정문에 위치했었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강진 병영성 장승 처럼 무안읍성의 외호장승으로 볼 수 없을까? 또한 읍성 4방위의 수문장으로 이해하면 예산 해미읍성 장승처럼 본래에는 4기 장승이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구와 고증은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아마츄어는 자유로움에 만족하자!

 

실제로 자료를 검색해보니 무안향토사연구소 카페에 "1986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무안의 문화유적'에는 2쌍의 석장승이 있었으며 1쌍은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에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사실이라면 제자리를 찾아 주기 위한 무안 군민들의 분발을 기대에 본다

 

서방대장군

 

문화재청을 비롯 많은 자료에는 장승의 재질을 화강암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금년 4월 "조선대학교 안건상 교수 ‘석장승에 대한 지질학적 고찰’  논문에 의하면 성남리 석장승은 래피리응회암, 총지사터 석장승은 자색 응회암, 그리고 범천사석장승은 화강편마암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질분포와 암석을 대조한 결과 원암의 공급지는 반경 1km 이내에서 채취한 것이 확실하지만 인근에 인위적인 채석장 흔적이 없어 이 암석들을 노두에서 채석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커다란 전석을 옮겨와 조각한 것으로 추정됐다. "

 

서방대장군은 민대머리 모양이며, 다른 부분은 동방대장군과 비슷하다. 부드러운 인상의 여성상이다.

 

동방대장군


동방대장군의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눈은 치켜 올라갔으며 귀는 쪽박귀 형태, 코는 우뚝한 삼각형에, 입은 ‘一자’모양으로 다물고 있는 강인한 남성상이다.

 

 



 

붉은 반점이 있는 화강암을 이용해 거친 사각 기둥 형태로 만들었으며, 각각 몸체에는 ‘동방대장군’, ‘서방대장군’이라 새겨 놓았다. 석장승의 제작년도는 조선 영조 17년(1741) 향약계 고문서의 기록에  마을 당산제에 대한 언급이 남아 있어 이 시기에 조성된 장승으로 추정한다.

 

 

후청마을에서는 음력 정월에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비는 당산를 지내고 장승앞에 간소한 음식을 차려 거릿제를 지낸다. 이때 부녀자들은 합장을 하여 소원을 빌고 무녀나 단골아비가 축언을 하여주기도 하였다. 영조임금시에도 치루어졌던 소중한 우리의 민속이 1972년 2월 이후에는 없어졌다고 하니 이또한 새마을 운동 역기능의 소산일 것이다.

 

2012.11.04

728x90
728x90

'전라남도 > 무안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안...승달산 목우암  (0) 2013.01.10
무안...법천사 석장승  (0) 2013.01.08
무안...총지사지 석장승  (0) 2013.01.07
무안...약사사 석조약사여래입상  (0) 2013.01.06
무안...미륵사 석불대좌  (0) 201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