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영암군

영암...채지리 매향비

임병기(선과) 2012. 12. 2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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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리 성덕 매향비. 매향비란 매향 의례 후 향나무를 묻고난 뒤  시기, 장소, 주체 등을 기록한 비문을 말한다. 비문에 의하면 조선 세종 12년(1430)에 세운 매향비로 육안으로는 명문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 시기에 남해안을 중심으로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피폐화된 현실세계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영원을 담아 침향했던 사례로 보인다. 매향비에 대한 답사기는 사천.영광 입암리 매향비 등 여러편을 올려 나의 글 대신 문화재청 자료를 정리하였다. 

 

매향비埋香碑는 자연석에 음각된 금석문 자료로서 1992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거주하는 최금섭씨가 미암면 소재 해주최씨 문중선산에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는 사실을 영암군청 문화공보실에 제보로 알려진 문화재이다.

 

매향의식은 미래구복의 성격을 지닌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서 매침埋沈한 향나무을 매개로 하여 발원자와 하생下生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매향의 적격지가 계곡수와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암 채지리의 매향비 역시 해남만과 남강포, 춘동 저수지가 가까이 위치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매향비로서의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비석은 거친 자연석을 이용하여 석면을 다듬지 않은채 글씨를 새겨 넣었다. 음각된 비문의 자형은 일정하지 않고 정서도 되지 않았다. 매향비를 채지리 마을에는 ‘보물이 숨겨진 비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비문을 해독하여 보물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벼락을 맞았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한편 제대로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의 비문이긴 하지만 대체적인 내용을 옮겨보면

1행은 「선덕오년십이월십구일(宣德五年十二月十九日)」

2행은「(비?)시주(물)소(합)결형제((妃?)施主(勿?)所(合?)結兄弟)」

3행은「등윤진포년지육리(문)(等伊珍浦午地六里(問?))」

4행은「침향비치(?)(沈香碑置(?)非(?)石)」이라 새겨져 있다.

 

확실한 내용은 선덕오년, 즉 1430년(세종 12)12월 19일에 매향비가 세워졌으며 매향주체로 보이는 분명치 않은 시주자들과 매향장소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향비는 영암 채지리 외에도 전남 신안 암태도·영암 엄길리·영광 입암리·해남 맹진리·장흥 덕암리 등지에 모두 5기가 보존되어 있다. 또한보물 제 614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남 사천의 매향비를 비롯하여 충남 해미와 평안도 정주에 남아 있으며, 강원고성 삼일포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던 비는 현존하지 않은 가운데 탁본만 전해지고 있다.

 

                                                                                     201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