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창원시/창원시

창원...백월산 남사(남사지)

임병기(선과) 2012. 8. 2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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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 월백리에 위치한 산. 백월암 순례기에서 언급한 백월산 사자암 전래기의 산이다. 

 

남사

 

내비가 안내를 따라 도착한 남사지에는 남사가 있었다. 백월암 답사기에서 표현한 설화에 맞게 좌측전각은 현신성도미륵지전 現身成道彌勒之殿으로 미륵이 된 노힐부득을 모신 전각이며, 우측은 낭자의 몸을 빌린 관음을 모신 관음전이다. 앞의 순례기에서 남사 창건 설화를 살펴보자.

 

발길을 돌린 낭자는 노힐부득이 있는 암자로 가서 똑같은 청을 하며 시를 읊었다.


첩첩산중에 날은 저물어
가도 가도 아득한 땅
송죽의 그늘은 더욱 깊어 가는데
골짜기의 물소리는 더욱 새로워라
자고 가길 청함은 길 잃은 탓도 아니요
스님을 성불하는 길로 인도할까 함이니
바라건대 스님께서 제 청만 들으시고
누구냐고 묻지마오

이 시를 들은 노힐부득은 깜짝 놀라서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들이 하는 착한 행동수의 하나인 것, 깊은 산속 밤이 어두운데 어찌 당신을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하며 낭자를 머무르게 하고 노힐부득은 정신을 맑게 하여 염불에만 전념했다. 날이 밝으려고 할 때 낭자가 아기를 낳으려는 기운을 보이면서 도움을 청했다.노힐부득은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짚자리를 마련하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켜주고 나니, 그 목욕물은 갑자기 진한 향기를 풍기면서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자 낭자는 노힐 부득도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노힐부득은 마지 못해 옷을 벗고 목욕을 하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결이 황금빛으로 빛나면서 옆에 연꽃모양으로 조각된 좌대가 생겨났다. 낭자는 노힐부득을 그 좌대에 앉기를 권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관음보살인데, 스님을 도와서 최고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 한 것입니다."하면서 사라졌다.

 

한편, 달달박박은 저녁에 낭자를 물리쳤으니, 낭자가 반드시 노힐부득을 파계시켰을 것이라 믿으며 비웃어 줄 작정으로 노힐부득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노힐부득은 연화대에 올라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명을 내뿜으며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있었다. 달달박박은 자신을 찾아 온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여자로만 본 것을 후회하며 자비로운 미륵존상이 된 노힐부득에게 자신을 이끌어 줄 것을 청하자 노힐부득은 이제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말해주며, 그를 남아있는 목욕물로 몸을 씻게 했다. 그러자 달달박박 역시 무량수불이 되었다.

 

 이때 백월산 아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우러러 보며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두 부처는 불법을 설명하고 나서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경덕왕이 절을 창건했는데, 바로 이 절이 남사라고 하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백월산을 중심으로 남쪽 계곡 언저리에서는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는데, 기와 조각에 "남사"(서기757년에 창건됨)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탑재와 석등들이 주위 논바닥에 박혀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 곳이 절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북쪽에서도 많은 기와조각과 삼층석탑, 불상 등이 출토되어 여기에도 절이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백운암

 

남사를 찾아온 목적인 석불좌상과 석등 부재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남사 주차장 좌측 산길에 백운암  팻말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등산로로 보였지만 이용객인 많은 산행코스는 아닌듯 잡초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포기할려는 마음을 몇 번이나 고쳐잡으며 도착한 백운암 법당은 폐사가 된지 오래된 듯 보엿다.

 

 

통일신라시대 팔각원당형 석등이다. 복련이 고운 대좌, 두동강 난 팔각형 간주석이 받침기둥으로 쓰였다. 석등이 이렇게 푸대접 받은 곳이 과연 암자였단 말인가? 조금만 보수하면 신도가 구름같이 몰려드는 천년고찰의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었을텐데. 이렇게 방치한 것을 모르는(인력이 부족하여 손이 미치지 않는다고 해명하겠지만) 지자치단체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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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석도 예외없이 주초로 활용(?)되었다. 상대석과 옥개석만 갖추면 완벽(?)한 석등이지 않은가? 문화유적 총람에 언급된 백운암 석불좌상은 어디로 갔을까? 석등부재도 도난의 검은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근처 남사로 옮기든지 시급히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에이 열받어!!!!!!!!!!!

20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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