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밀양시

밀양...부은사 석조아미타불

임병기(선과) 2012. 6. 20. 07:02
728x90

 

‘신비의 나라’ 가야에 신비로운 불교의 꽃이 2000년 전에 피었다.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우리나라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세운 무척산의 모은암(母恩庵), 가락국 2대 거등왕이 부친 수로왕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세운 부은암(父恩菴)까지 가야의 사찰은 왕족의 인연과 항상 함께 하였다. 가야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곳으로 알려져 있는 부은암은 밀양시 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부은암 인근에는 1~3세기 무불상시대의 불교를 상징했던 2기의 장방형 돌무더기 스투파가 지나가는 길손에게 신비로움을 준다. 부은암은 천태산에서 발원한 맑은 계곡물이 주위에 흐르고 이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커다란 암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위에 새겨진 이상한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시대에 어느 장군이 타고 온 말의 발자국이라 전해지고 있다.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왕족의 절 부은암은 모은암과 더불어 가야가 부모님의 큰 은혜를 특별히 여겼음을 알 수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삼랑진을 공약하기 위하여 작원관지(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하였으나 의병들의 막강한 저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태산을 넘어서 오다 부은암이 있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부은암은 조선 말경 1860년(철종11년)에 동화사 학송스님이 옛 부은사지에 부은암을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부은암 뒤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천불보전 뒤에 있는 지름이 78cm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 돌은 인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요니(여자의 음부)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천태산 정상의 기둥바위를 남자의 남근으로 보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요니에 떨어지게 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불자들이 이곳에 와서 출산 및 득남기도를 했다고도 한다...전통사찰관광정보

 

아미타 삼존불

아미타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반야용선

밀양부은사석조아미타불좌상(密陽父恩寺石造阿彌陀佛坐像)

 

문화재로 등록된 부은암 석조아미타불이다. 뵙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

 

불상의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상반신에 비해 무릎이 높은 편이다. 수인은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해 가지런히 내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중지와 약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대고 있는데, 아미타인의 오른손을 촉지인과 같이 표현하여 석조 조각기술의 한계를 보여준다.머리는 육계와 구분이 없이 둥글며 그 경계에 반원형의 중간계주와 정수리에 원통형 계주
를 각각 두었으며, 작은 나발이 조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넓은 방형의 얼굴은 턱과 볼을 둥글게 깎아 양감이 느껴지며, 가늘면서 길게 그은 반개한 눈, 눈썹에서 이어지는 짤막한 듯한 코는 양측의 콧방울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일반적인 조선후기 불상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작은 입술의 희미한 미소는 자비로우면서도 차분한 인상을 보여준다.

 

법의는 변형통견식으로 왼쪽 어깨에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걸치는 형식이며, 목에서 대의를 한단 접어 왼쪽 어깨를 덮고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어 내려오며, 그 끝단은 곡선으로 처리되었다. 왼쪽 어깨를 덮어 내린 대의의 끝단은 가운데가 살짝
올라가면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자락을 다시 한번 접어 좁은 끝단을 이루고 있는 점은 특징적이다. 아래가 좁은 “U”자형으로 드러나는 가슴은 수평으로 입은 승각기가 드러나며, 발목에서 한번 접어 흘러내리는 군의 자락은 두 개의 큰 자락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끝단은 곡선을 이룬다.

 

이 불상은 양산 통도사 포교당에 봉안된 석조관음보살상의 본존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은사 불상은 양산 포교당 관음상에 비해 양감이 남아 있는 점이나 얼굴의 표현,그리고 대의의 옷주름을 처리하는 표현 기법이 좀더 섬세하고 세련되어 양 불상이 유사한 특징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근 경남지역의 몇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양식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의 원인은 시간적인 차이 혹은 조각승의 차이 등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은사 불상은 조선후기 불상조성의 경향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밀양시청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2012.04.15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