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읍성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2.21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성문 위엔 진무루라는 한자가 적혀져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은 허물어져 객사와 동헌, 남문인 진무루가 전해질 뿐, 동문과 해자 사직단 등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성은 원래 돌로 축적한 석성이였으나 훗날 허물어진 곳을 흙으로 보강하여 토성이 되었다고 한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 명을 동원하여 그 해 2월부터 5월까지 만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무장 객사
이제 우리회원들은 객사의 기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믿어 설명은 하지 않겠다. 1990년 이전 면사무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건물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하였다. 궐패를 걸어놓고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올리던 정당은 정측면 3칸 겹처마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은 장대석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띠살문 창살이며 4분합 문을 달았다.초석의 석재 하부는 네모나게 다듬었고, 위쪽은 반구형으로 다듬었으며,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측면 3칸의 좌우익랑은 정당보다 지붕을 낮게 조성였으며 두리기둥에 팔작지붕이다.
송사지관
무장객사 정청에 있는 송사지관 편액. '송松'은 무송茂松에서 따온 것이며 ‘사沙’는 '장사長沙’의 ‘사沙’를 딴 이름으로 무송은 현 고창의 고려 시대 지명이다. 장사는 오늘날 무장 성송 대산 공읍 상사 해리 심원 일대로, 신라 하대의 지명이라고 한다.
석축을 오르내리는 계단 소맷돌의 무늬. 호랑이, 구름무늬 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이나요? 석축 양쪽 끝에 화병에 연꽃을 꽂은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본래 객사 건물 부재였을까?
객사 비림. 무장면에 산재해 있던 것을 옮겨 왔다. 선행비 6기, 불망비 7기, 청백비 1기, 기공비 1기, 기타비 1기가 있다.
해자垓子?의 흔적 처럼 보인다.
2012.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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