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여수시

여수...타루비.좌수영대첩비.동령소갈비

임병기(선과) 2011. 11. 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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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건너편 고소동의  낮은 동산처럼 보이는 계산에 위치한 고소대. 이곳은 여수 8경의 하나로 꼽히던 장소로 고소정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없는 듯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고즈넉하기 이를데 없고, 비각인 고소대와 오래된 느티나무만 무표정으로 반긴다. 글의 내용은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동령소갈비

 

좌수영 대첩비를 세운 내력을 기록한 비.장방형 비좌에 1매석으로 된 탑신과 옥개가 있다. 비좌는 마멸이 심하다. 정면과 측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좌우에 나선형의 장식이, 반원형 중앙에 여의주 무늬가 앞뒷면으로 있으며, 맨 위에는 연꽃 봉우리형 보주가 조각되어 있다.

 

현감 심인조가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충무공을 숭모하는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장방형 비신 뒷면 음기에 "숭정기원후주갑무술인정일립(崇禎紀元後周甲戊寅丁日立)"이란 명문이 있어 숙종 24년(1698)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좌수영 대첩비

 

충무공 이순신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와 함께 일제의 박해로 1942년 서울로 운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복 이후 해남지역 유지들의 수소문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비는 한 돌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거북받침돌을 두고, 비몸을 세운 후 구름과 용, 연꽃 등이 조각된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글은 당시 이름을 날렸던 이항복이 짓고, 글씨는 명필 김현성이 썼으며, 비몸 윗면의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는 비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세워졌으며, 비의 왼쪽에는 숙종 24년(1698) 남구만이 지은 비의 건립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이순신의 막료로 활약하였던 수군통제사 유형과 좌수영지역의 유지 및 후손들의 노력으로 건립하게 된 경위를 비롯하여, 이 때 여수 타루비(보물 제1288호)도 대첩비 옆으로 옮겨 세우고,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다는 비 건립 전후의 기록이 밝혀져 있다.

 타루비

 

좌수영대첩비와 마찬가지로일제강점기에 행불되었다가 다시 찾았다.  이순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받침돌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릿돌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비문은 ‘타루비’라는 비의 명칭을 앞면에 크게 새기고, 그 아래로 명칭을 붙이게 된 연유와 비를 세운 시기 등을 적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선조 36년(1603)에 이 비를 세워두었다.  

20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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