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용인시

용인...문수산 마애보살상

임병기(선과) 2011. 6. 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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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민속촌 앞 하나뿐인 모텔에 투숙했지만 보일러 소음으로 밤을 거의 지세워야 했다. 본래 잠도 없지만 오늘은 더욱 일찍 일어나 민속촌으로 향했더니 제기럴 9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출입을 막는다. 목적을 말하고 석탑만 옥외의 석탑만 보고 오겠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인다. 에이~~~CCCCCCCC

 

그렇게 달리기를 한 참 네비양의 안내는 이어지는데 눈앞에 목적지로 삼았던 문수산 마애 보살상 문화재 이정표가 나타난다. 고갯마루 옆에 마련된 주차장에 파킹하고 6시 30분 왕복 4KM 아침 요깃거리 답사를 시작했다.

 

이 고갯마루를 굽든 고개 또는 굽은고개, 곱등고개라고도 했다. 현재는 2차선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험한 지형 때문에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고개 밑에 범암굴, 호리 등의 지명이 생길 정도였다. 또한 임꺽정이 죽산 칠장사에 있는 스승을 만나러 가다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라고 용인시 홈페이지에는 소개되어 있다. 

 

 

 이른 아침 동물의 작은 움직임과 바람소리에도 두려움이 엄습해  산행이 호젓하지만은 않았다. 6~70년대를 살아온 우리세대에게 낯익은 추억이 되어 버린 간첩신고 안내문에는 이른 아침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를 신고하라는 문장이 버젓이 있지 않았든가? 더군다나 산아래는 석유 비축기지가 있어 국가 주요시설을 촬영하는 사람, 즉 간첩으로 오인되기 적합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어디선가 오분 대기조 또는 경찰이 출현할 듯한 느낌에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이렇게 잘난 중생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마애불이 있었던 절집이 문수사 였나? 그래서 산이름이 문수산이 되었고? 아무튼 문수산 정상에는 문수봉 팻말이 3개나 있지만 높이는 제각각이다. 또한 정자와 간단한 운동시설도 설치되어 산행객의 쉼터 역활을 한다. 여기에 마애불이 계실 줄 알았는데.

 

 

야속하게도 200M 하산하라고 한다.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문수산. 정상에서 잠시 하산하면 입구에 산죽이 진을 치고 있는 바위면에 조각된 마애불이다. 마주보고 있는  보살상은 돋을 새김과 선각으로 조성하였다. 좌측 보살은 문수보살상이고 우측 보살은 보현보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화대좌위의 문수보살상은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마모가 심하지만 머리의 연결부에 둥근 구슬과 같은 띠 문양이 표현된 보관을 썼고, 목에는 삼도를 표현했다. 풍만한 얼굴에 각이 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눈은 밑으로 향하여 뜬 듯 감은 듯 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추측되지만 확실시 않고, 허리는 잘록하며, 승각기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고 왼손은 가슴에서 구부려 엄지와 검지를 맞댄 시무외인의 수인처럼 보인다. 팔목에는 팔찌로 장식하였다. 보현 보살상에 비해 조각이  선명한 편이다. 다소 하체가 짧지만 S라인이 보살상이다.

 

 

보현보살상. 새김이 깊지 않아 얼굴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모습이 아니다. 소발? 그러면 보살상이 아닌가? 원만 상호에 볼에도 양감이 느껴진다. 눈두덩이는 두텁고 눈은 길게 새겼으며, 작고 도톰한 입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긴 두 귀는 어깨에 닿았다. 

 

두 손의 수인은 문수보살상과는 반대로 표현되어 있다. 허리 부분에서 군의를 묶은 띠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쪽면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두 보살상만이 새겨진 희귀한 도상(圖像)을 보여주는 마애불이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를 움츠려 경직된 모습이지만, 대담하게 단순화시킨 형태 묘사가 돋보이며, 얼굴 각 부분의 표현이나 섬세한 손발 묘사 등의 양식에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20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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