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이천시

이천...영원사 약사여래

임병기(선과) 2011. 5. 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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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져 오고 있는 사적기에 따르면 영원사는 신라 선덕왕7(638)년 海浩禪師가 靈源庵으로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이어 고려 문종22(1068)년에 慧炬國師가 소실된 절을 중창하였다고 하는데, 역시 이를 증명하는 자료는 전하지 않고 있다. 또한 혜소국사는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대략 光宗代(949~975년)에서 顯宗代(1009~1031년)에 활약한 스님이므로 문종22년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법당 앞마당 아래쪽의 약 80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도지정5-142호)가 당시 심은 것으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선조30(1597)년에 사명대사가, 숙종19(1638)년에 東溪 卨明大師가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 와서는 순조25(1825)년에 영안부원군 金祖淳의 후원으로 仁巖 致鑑禪師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위의 사적기에 따른 기록은 대부분 방증자료가 없어 사실여부를 알 수 없으나 1825년의 중건은 1827년에 葩濟 柳興慶이 공사의 전말을 적은 <圓寂山靈源庵記>가 전하고 있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영원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사전에 본존으로 모셔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해호선사가 영원사를 창건할 때 水瑪湖石으로 조성하여 봉안한 것으로 전하고 있지만 양식적으로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으며, 머리 부분은 새로 만들어 붙이고 부분적으로 수리하여 다소 제 모습을 잃었다. 부드러운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다.  법의(法衣)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이르는 옷섶에 걸쳐 늘어진 옷 주름이 독특하다. 오른발이 두툼한 왼쪽무릎에 얹어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발을 따라 꼬인 옷 주름의 형상도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무릎 위에 얹었고,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위에 약함을 받쳐 들고 있어 약사여래(藥師如來)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약사여래불에 대한 달빛에 물든 이야기를 가져온다. 해호선사가 창건 당시에 수마노석으로 만든 약사여래를 조성하여 봉안한 바 있었다. 그런데 후에 절이 모두 타고 약사여래만 남아있었다. 고려 문종22(1068)년 혜거국사가 불타버린 영원암을 중창할 때였다. 혜거스님의 꿈에 약사여래께서 나타나 "왜 나를 버려두고 갔느냐?"고 몹시 호통을 치셨는데 같은 날 신도들도 똑 같은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윗 산인 안산으로 올라갔더니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석불 스스로 내려와 계시므로 서둘러 약사전을 짓고 봉안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자주 약사여래의 위신력을 보인다고 한다. 

 

***전통사찰관광정보의 글 입니다.***

 20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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