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면 가교리 신암사는 명문가의 원찰 이다. 제례 때만 붐비겠지만 금동아마타불이 모셔진 고즈넉한 절집으로 오늘은 진달래만 텅빈 절집을 지키고 있었다. 기왕 탑을 복원하였으면 가운데로 세웠으면 좋았을텐데 중앙을 비우고 근자에 모신 아미타불을 향한 보살상과 나란히하고 있다.
신암사 입구의 묘자리 주인공 구예(具藝). 그는 고려말 인물로, 능성구씨 4세조라고 한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훗날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군되었으며 사후 당진 송악면 가교리에 묘를 잡았다. 남편이 죽자 부인인 아주(鵝洲) 신(申)씨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위해 묘지 옆에 작은 암자를 하나 지어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었으며, 처음에는 구룡사라 하였다가 나중에 부인 신씨가 세웠다는 의미로 신암(申庵)이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신암 현판
절 이름 신암은 신씨가 세운 암자란 뜻이다.
신암사에 모셔져 있는 고려시대 금동불좌상이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 능성 구씨의 4대손인 구예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면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은 청양의 장곡사 불상에 가깝지만 좀 더 당당하고 볼륨이 있으며, 얼굴은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상체는 장대하며 느슨하게 표현된 가슴근육은 장곡사 불상과 같은 양식이다. 하체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며 특히 무릎의 근육 묘사는 상체의 표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극락전 앞 7층탑으로 대부분 근래에 복원한 부재다. 복원하려면 옥개석도 동일한 형태이어야 하건만 제각각이다. 본래 부재는 상기단 갑석.초층 몸돌과 옥개석. 2층 옥개석 정도이다. 상기단 갑석에는 1단 탑신 받침이 있다.사진 솜씨가 탁월(?)하여 잡히지 않았지만 초층 옥신의 문비는 뒤집혀져 있다.옥개석은 처마의 반전이 심하다. 옥개받침은 3단이며 몸돌에는 양우주를 새겼다. 복원된 옥개는 반전이 매우 심한 편이다.
내사진은 사라지고 없어 가져온 구예의 묘 사진. 멀리 신암사가 보인다.
2010.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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