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논산시

논산...신풍리 마애불

임병기(선과) 2010. 5. 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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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면 신풍리. 마을 입구에서 중년의 부부에게 "미륵불"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마을에 미륵불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지만 아주머니는 머뭇거리며 "미륵불"은 없고 "마애불"는 있다며 말끝을 흘렸다. 어이쿠!! 모든 불상이 미륵불로 통하는지 알았는데 때론 의외의 장소에서 고수(?)와  조우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골마을 아낙에게서 깨우쳤다.

 

마을회관 앞에서 다시 위치를 물어 제일윗집 마당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올라 숨이 가빠질 무렵 멀리서 손을 내민다. 고종산 영사암지로 알려진 절터 뒷편  바위에  마애불은  탑정호를 등지고 자연 암반에 얕은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거대한 체구, 소발에 육계가 보이고 얼굴은 타원형이다. 가는 눈, 크고 뭉퉁한 코, 작은 입, 귀는 길다. 짧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다. 두광에는 3구의 화불을 모셨다.

 

 

상반신이 V형옷자락인 법의는 통견이며 앞가슴에 손을 모은 모습이지만 수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반신도  마멸에 의해 형태를 알 수 없다. 주형거신광배이며 신광에는 화염문이 보인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전해온다.

 

 

내려오는 길에 궁금하여 들린 건물. 영사암이라고 한다. 아마 절터에 세운 사당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 왔다.

 

"영사암은 조선세조(1455∼1468)때 좌의정을 지낸 의정공 김국광(議政公 金國光)과 공안공 김겸광(恭安公 金鎌光) 형제가 선영의 묘소에서 시묘(侍墓) 살이를 하던곳에 1475년 건립되었다. 건립될 당시에는 26간의 건물이었는데 없어지고 지금은 4간만이 보존되어있다.

 

가옥을 오래 보존하기도 어렵고 하인을 기거시키면서 묘소를 수호하기도 불편하므로 암자(庵子)를 겸한 수호사(守護舍)로 영사암을 건립하여 승려를 두고 독경과 제사를 모시게 하였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조선 고종 12년(1875년)에 건축된 조선후기의 건물로 원주(圓柱)를 사용하고 팔작(八作)지붕 형태의 민도리 집으로된 전통한옥 건물이다. 의정공 김국광은 태종 15년(1415년)에 출생하여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조 6년 병조참판에 있을 때 이 시애의 난을 평정하였다. 예종때에는 우의정, 성종때는 좌의정에 오르고 좌리공신 1등에 광산부원군으로 봉해졌다."

 

 

씁쓸한 느낌 지울 수 없다. 모르긴 해도 상당수의 부재는 영사암 구조물이었을 것이다. 마당 한 켠에는 석탑, 석불 대좌(?)로 여겨지는 부재들이 쌓여 있었다. 결국 그자리도 그렇게 흘러갈텐데......

 

201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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