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담양군

담양...읍내리 당간

임병기(선과) 2009. 11. 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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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읍내리 당간지주는 여러번 들렸었고 이미 답사기도 두어번 올렸다. 하지만 담양읍내에서 석탑과 당간지주를 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자료는 담양군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으니 님들 답사시에 참고하길 빈다.

 

 

단층 기단 위에 지대석을 겸하는 장방형으로 상면이 약간 경사졌을 뿐 측면에 아무런 조식이 없으며 정면 중앙에 장방형 1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당간대좌(幢竿臺座)와 양지주(兩支柱)를 받치고 있다. 지주는 방형 석주로 약 80cm의 사이를 두고 남북로 상대하고 있는 바 하단부는 기단 받침대 안에 묻혀 있으므로 구조는 알 수 없다.
 
당간은 가늘고 긴 8각석주 3개를 연결하였는데 그 위에 원형 당간을 올려 마디의 표식이 뚜렷하다. 8각석주의 연결방법은 통식으로 상하석의 연접부를 반으로 깎고 중간석의 양단을 또한 반으로 깎아 서로 밀접 시켜 각기 철제환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연결부분에는 또 상하에 원형간공(圓形杆孔)을 관통시켜 더욱 고착을 돕고 있다.

 

 

당간 상단부에는 금속제의 보륜이 이중으로 장식되고 풍향(風響)같은 장식이 부착되었으나 현재는 두 개가 남아있다. 첨단에는 삼지창(三枝槍)과도 같은 예리한 철침이 솟아있는데 이 같은 부속물로 보아 이 당간은 장식적인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있는 귀중한 일례라 하겠다.

 

 

또 이 당간의 바로 옆에는 비석 1좌가 있는데 그 내용은 이 당간에 관계되는 것으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석도를 세운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개 읍을 처음 설치한 때부터이다. 갑인년에 큰바람으로 꺾여 나무로 대신 세웠다가 작년 봄에 또 훼손되어 중건한 것이 기해 3월이다. 숭정기원후 4기해 3월 일 부사 홍기섭 기록하다(石棹之立年不可攷 盖自設邑始幾, 年至甲寅爲大風折以木代立昨春 又頹今則如初重建歲己亥三月也, 崇禎紀元後四己亥三月日知府洪耆燮記)」라고 기록되었으며 후면에는 당시 유사(有司), 호장(戶長), 읍리(邑吏) 등 이 비석 건립의 관계자의 직책과 성명이 음각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석당간은 조선 헌종5년(1839)에 중건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큰 바람에 꺾여 나무로 대신 세웠다(大風折以木代立)」운운한 내용으로 보아 큰 바람으로 넘어진 것을 이때 다시 복원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양지주는 그 양식이 고려시대 것으로 추측되며 또한 인근 오층석탑이 고려시대의 조성임을 감안할 때 이 석당간의 건립연대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석당간 뒷쪽으로 보이는  관방제림

 

이 숲은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및 은단풍 등 여러 가지 낙엽성 활엽수들로 이루어졌으며, 나무의 크기도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m 정도의 것부터 5.3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나무의 수령은 최고 300년이 된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은 조선 인조 26년(1648) 당시의 부사 성이성(府使 成以性)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철종 5년(1854)에는 부사 황종림(府使 黃鍾林)이 다시 이 제방을 축조하면서 그 위에 숲을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처럼 예로부터 산록이나 수변 또는 평야지대에 임야구역을 설치하고 보호하여 특이한 임상을 갖춘 곳을 임수(林藪)라 한다. 임수의 종류를 나누어 보면 종교적 임수, 교육적 임수, 풍치적 임수, 보안적 임수, 농리적 임수 등 그 임상과 입지조건 또는 설치의식에 따라 구분된다. 전남에는 완도 갈지리 임수, 곡성읍 읍내리 임수, 곡성 오곡면 외천 임수, 광양 인서리 임수, 광주 경양제 임수 등 몇 군데가 있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 담양 관방제 임수이다.

2004년에는 산림청이 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 (주)유한킴벌리 등과 공동 주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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