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고흥군

고흥...천등산 금탑사

임병기(선과) 2009. 11. 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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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염집 안채 같은 분위기로  비구니 스님이 주석하시는 가람임을 알겠다. 가정집 같은 느낌의 절집에는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절전체에 스님의 정성과 꼼꼼한 손길이 미치치 않은 곳이 없었다. 석탑과 후불탱. 목조삼존을 뵙기 위해 들렸지만 그냥 머물고 싶은 절집이다.

 

금탑사는 포두면(浦頭面) 봉림리(鳳林里) 천등산(千燈山) 중턱에 위치한 조계종 사찰(寺刹)이다. 천등산의 천등이란 옛날 가엽존자(迦葉尊者)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크게 천등불사(千燈佛事)를 한 것을 이르는 것이며, 금탑사의 금탑이란 인도(印度)의 아육왕(阿育王)이 보탑(寶塔)을 건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산아래서부터 걸어서 금탑사를 답사하면 좋을 것이다. 요즘 인기상품인 각지역의 올레길 못지않게 청량한 바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 군락, 가을 낙엽을 나르는 물소리 벗삼아 산길을 걷는 맛도 여행의 일미 아니겠는가? 

 

사진 좌측에 보이는 스님은 극락전 청소하기 위해 가시는 중이다. 기다리다 지쳐 사진 촬영을 위해 양해를 구했더니 짧게 대답하시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다. 석탑의 위치를 물었더니 도난당했다는 말씀난 하셨다. 자료에 의하면 금탑사 복원 부재로도 활용된 듯하다.

 

극락전은  정.측면 3칸*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막돌 허튼층쌓기의 기단, 덤벙 주초, 배흘림이 보이는 원형 기둥을 세웠다. 

 

 

극락전 삼존불. 재료는 목재이며 1993년에 개금(改金)하였다고 한다.

 

"본존불은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있고 계주가 보인다. 상호는 4각에 가까운 방형으로 경직된 모습이며 백호가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배 아래에서 U자형을 보이고 있으며 배위에서 일자형의 내의자락이 지나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어깨위로 올리고 왼손은 무릎위로 내린 상품하생인을 결하고 무릎은 결가부좌를 하여 오른발이 왼다리 위로 올라오게 하는 길상좌를 취하였다. 무릎을 휘감고 있는 군의자락이 무릎중앙에서 모아지고 있는데 다소 느슨해진 느낌이다.

 

왼쪽(향우)의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있다. 오른쪽(향좌)의 보살상은 손 모습만 반대로 하고 있을 뿐 제작수법은 거의 유사하다. 이들 협시불은 아미타불을 협시하고 있는 관세음, 대세지 보살이다. 조성연대는 조선후기로 보인다."

 

 

"목조삼존불의 뒤에 모셔진 후불탱.  화기(畵記)에 의하면, 1847년(헌종13)에 제작된 것이다. 불화 조성 시에 관련된 여러 인물의 명단이 적혀 있어 조선시대 후기 불화 연구에 좋은 참고가 되고 있다. 그림을 그린 금어로는 수좌인 금암 천여(錦庵 天如) 스님을 포함하여 전부 10명이다.

 

비단에 그려진 것으로 크기는 347cm× 333cm이다. 화면의 가운데 아미타여래가 결가부좌한 모습을 중심으로 상하좌우 네 모서리에 사천왕이 각각 배치되었고 그 사이에 아난과 가섭 등의 4대 제자, 관음과 지장 등의 8대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정갈하다. 숨소리마져 부담이 될듯하다. 다소곳이 햍볕을 즐기는 장독대, 그냥 정겨운 담장, 안온한 느낌의 정취 , 가끔 기대하지 않은 풍경이 즐겁다.

 

 굴뚝1

 굴뚝2

 굴뚝3

 

나라는 중생은 건방지게도 여행이라는 말보다 답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감히 사찰순례라는 표현을 할 만큼 신심이 독실하지 못하여 이도저도 아닌 문화유산 답사라고 칭하고 다니지만 가끔 머물면서 새벽 예불에 참여하고픈 절집을 만난다. 금탑사가 그런 분위기로 오래 남을 듯하다.

 

다음에 인연지을 때는 쑥개떡과 톱나물밥도 먹고 싶지만......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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