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장성군

장성...원덕리 미륵불

임병기(선과) 2009. 9. 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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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사. 그곳에 원덕사가 있었다. 호남선 철로를 등지고 고군분투(?)하는 미륵불을  향해 적멸보궁에서 부도를 배향하듯 법당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예를 올릴 수 있었다. 오래전 백제시대부터 신흥사(검북사 혹은 고묵사)예터였다고 전해온다.

 

불상이 있는 원덕마을은 갈재 남쪽 계곡의 수구에 해당하므로 장성 북쪽에서 악귀를 막던 비보 장승의 역할,토속적 수호신 및 기자 신앙의 상징으로 모셔진듯 하다. 요즘도 아들을 못 낳는 여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 옛님중에도 달려가고픈 님이 아니 계실까?

 

돌기둥 모양의 석불은 가슴 아래의 몸체와  위로 가슴부터 머리까지는 다른 돌을 얹어 조각하였다. 팔각 보관, 방형 얼굴, 커다란 눈, 뭉툭한 코, 두터운 입술을 가진 석장승 분위기다. 몸은 입체감이 없다.목에는 삼도를 굵게 표현했고, 통견의 법의는 가슴 아래부터는 반복적인 선으로 돋을새김했다.


 

고려시대에 신체의 표현이 절제되고 간략화 괴체화된 거대한 석불이 많이 조성되는데, 원덕리 미륵불도 근엄한 인상보다는 토속미 넘치는 친근한 인상을 가진 석불이다. 미륵석불 팔각 삿갓 각 면에는 장식홈이 남아 있다.

 

원덕리 미륵불은 불교가 쇠퇴해가는 과정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한다.

 

 

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진 원덕리 석불. 달빛에 물든 이야기 한 자락을 장성군청 홈에서 옮겨왔다. 

 

"이 미륵석불은 근래에도 영험을 보인 일이 많은데, 당시 한 인민군이 이곳을 지나다 미륵을 보고 '이런 돌기둥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얼굴을 향해 총을 쏘았는데, 이 인민군은 5리도 못가 사거리에서 피를 토하고 급사했다고 한다. 며칠후, 원덕마을 강대엽 어머니가 코가 심히 아파 백방으로 약을 구해 치료를 해 보았으나 낫지 않았다.

 

평소 불심이 있던 강씨 어머니는 미륵을 꿈에 보고 아들에게 미륵불을 찾아가 공을 드리고 오도록 했는데 미륵불을 찾아간 강씨는 그의 어머니가 아픈 자리와 같은 미륵불의 코가 총을 맞아 깨어져 있고 그 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다리를 놓고 총알을 빼내 주었는데, 그 뒤 그의 어머니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여든살이 넘도록 장수했다고 한다." 

20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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