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함평군

함평...고막천 석교(똑다리)

임병기(선과) 2009. 9. 2. 07:51
728x90

 

 

월천공덕(越川功德).월천공덕이라 했다. 작은 나무다리는 여름장마에는 힘없이 허물어졌다. 태풍 앞에는 불가항력으로 붕괴되었고. 엄동설한에 미끄러운 징검다리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중생들의 삶이 안타까워 고려 원종 14년(1273). 지금도 석장승이 전해오는 무안 승달산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는 원을 세우고 다리를 놓았다는 달빛에 물든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막천 석교. 고막대사 이름에서 유래되었는지 아니면 나주와 함평을 이어주는 고막천에 건설되어 그렇게 불리는지 온전한 제이름이 있다. 하지만 민초들은 영산포로 떡을 팔러 다니는 길목이기에 삶의 애환이 농축된 떡다리 또는 똑다리로 부른다. 또한 돌다리위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윗돌이 움직여 똑딱다리라는 별칭도 있다고 한다.


본디 모습은 어떠했을까? 700년을  지켜온던 고막대사의 신기는 일제강점기에 원형을 잃었으며, 근세에 우리 문화재 복원의 만병통치약이었던 시멘트로 1차 수술하여 요상한 모양새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최근에 다시 첨단(?)의료술로 성형수술 했지만 집도의사는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는지 따뜻하고 온화하며 정이 뭇어나던 꼬막다리 할머니를 화장발에 빛나는 차가운 미스 꼬막다리로 탄생시킨 느낌 지울 수 없다.

 

 

"고막천 석교는 널다리이면서도 목조가구의 결구수법인 주두의 가구법을 택한 것이 특징이다. 다리의 상판은 우물마루 형식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목조건축과의 관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측 가장자리 1경간은 수리 시에 우물마루를 널마루로 깔아 다양한 상판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기초는 하상의 뻘에 생나무말뚝을 전 구간에 걸쳐 촘촘히 박고, 이 위에 규격이 큰 장방형의 절석을 정교하게 깔아 급류에도 휩쓸려 나가지 않도록 하여, 지금까지 홍수에도 견뎌온 가장 튼튼한 교량기초 구조를 보이고 있다.

 

수중 지하 바닥은 지반보강을 위해 나무말뚝을 촘촘히 박아 이를 지지대로 하였으며, 그 주위에 잡석을 일정 두께로 깔아 바닥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 공법을 택하였다. 서기 1390∼1495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막천 석교는 널다리형식으로 원래의 위치에 원형을 간직하고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유일의 다리로서 보기 드문 공법을 사용했으며, 석교가 지닌 교량사적 중요성을 지닌 귀중한 자료이다."..문화재청

 

고려 원종 14년(1273).건설되었다고 달빛에 전해오던 이야기가  실제로 2001년 보수공사시 바닥기초 나무 말뚝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최소한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되어 달빛 야사가 백일하에 노출(?)된 신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똑다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온갖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버텨온 비기는 뭘까? 틈. 틈새였다. 물흐름을 강하게 막지 않고 틈새를 두어 자연스럽게 흘러 나가게한 장인 솜씨이다. 똑다리 공법은 진천 농교, 제주도 돌담, 흙벽, 한옥의 한지 창살 등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다리에 서면,  만남. 이어주고 맺어주는 만남이 떠오르고,  마음은 늘 늦가을 노을이 고운 저녁무렵의 색조로 그려진다. 그리운 사람이 없는가? 없다면 불행은 아닐지라도 행복한 일상도 아니라고 믿는다. 지금부터라도 누군가를 그리워 하자. 이성이 아니라도 그리움 대상은 가슴속에 무궁무진 하지 않겠는가?

 

가끔 홀로 저문 시간에 오래된 다리에 걸터 앉아 동요 읊조리며 추억, 그리움을 그리워 해보자. 

 

2009.07.26 

 

728x90
728x90

'전라남도 > 함평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평...노송마을 동자석  (0) 2015.05.03
함평...보광사 동종  (0) 2015.05.02
함평...대원군 척화비  (0) 2013.01.01
함평...대원군 척화비. 해보리 석불입상  (0) 2009.09.03
함평...모악산 용천사  (0) 200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