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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신룡동 오층석탑.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09. 8. 3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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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정 마무리는 영광 불갑사로 계획하였으나 탑돌이는 신룡동 탑이 찾기 쉽지 않다며 신룡동 탑안내를 자청했다. 이정표 하나 없는 길. 찾아 드는 사람이 이상하리만큼 무대책 무책임의 문화유산 행정을 짐작하고도 남을듯 했다.

 

마을 축사 입구라도 문화재 이정표를 세운다면 네비로 추적하는  답사객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 들 것이다. 막다른 길.  진퇴유곡이라고 했던가. 모든 원망과 불신을 잠재우는 5층탑이 고진감래의 희열을 안겨주었다. 석탑 옆 석불 입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금상첨화 이었다.

 

외딴 민가.  한가로운  젖소의 되새김질. 악취. 멍보살의 악다구니. 그 모두를 삼키고 석탑은 당당하다. 석불입상의 처연한 느낌만 없었다면 콧노래라도 부르고픈 폐사지. 이름도. 사적도. 스쳐간 스님도 알려지지 않은 절터에도 여름은 무르익고 있었다.

 

 

탑은 2층 기단. 상하기단의 탱주 하나. 우주. 초층에 비해 급격히 낮아진 2층 탑신. 옥개받침은 1∼3층. 4단씩, 4∼5층. 3단이다. 상기단에는 부연이 분명하고, 다른 탑과 달리 몸돌 받침이 하나이다. 석탑은 하층 기단의 여러 부재와 상층 기단의 면석 2매가 없어진 상태이어서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고 한다.

 

"복원 당시 1층 탑신 상면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은 방형의 금동사리함과 사리병(舍利甁)을 비롯하여 금동연화편(蓮花片) 2점, 소형목탑(小形木塔) 7점, 죽편(竹片) 등이 있는데, 현재 국립 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문화재청

 

옥개석에는 우동이 보이고 낙수면은 완만하다.  추녀 반전은 심하며, 상륜에는 현재 노반과 보주가 남아 있어나 본래 부재는 아니라고 한다.  탑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라고 한다.

 

신룡동 오층석탑 사리기(광주박물관)

 

1981년 신룡동 옛 절터에 남아있는 고려전기의 오층석탑  1층 탑신 사리공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사리갖춤은 직사각형 모양의 금동사리함과 병 모양의 금동사리그릇을 비롯하여 금동연꽃장식편과 풍경편, 소형 나무탑, 대나무 편 등 이다. 금동사리함 속에 연꽃장식을 넣고 그 위에 사리병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형 나무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무구정경无坵淨經』에 의거 99기의 작은 탑을 넣는 전통을 따라 상징적으로 안치한 것으로 추정되며 대나무편은 다른 출토 예가 없어 정확한 의미가 전하지 않는다.

 

 

석조의 여래입상. 대좌와 발목이 묻혀 있다. 저렇게 두어야만 할까? 한숨부터 나온다. 광배도 잃어버렸다. 박살 났겠지? 과연 상호 맞는가? 상호로 미루어 옛절집 수난사를 짐작하겠다. 그나마 남아 있으니 고마웁다. 이제는 우리의 몫. 우리가 보호하고 영원히 물려주어야만 한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이며 이땅에 살고간 보답이다.

 

철저하게 훼손된 얼굴 형태는 구분이 어렵고 목이 절단 되어 삼도도 불투명하다. 흔치 않은 수인이다.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검지로  땅을 가리키는 촉지인이다. 법의는 좌우대칭의 통견이지만 역시 흔치 않게 복부에서 U자형을 이룬 법의 옆에는 손목에 걸친 모습의 상의가 길게 보인다. 

 

 

기가 막히는 군. 신룡동 5층탑만 찾고 그 분의 자취를 간과하고 돌아왔다. 다시 가야 겠다. 깊이 있는 답사가 아쉽다. 차라리 한 분야만 몰두할까보다!!!  그참!!!

 

20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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