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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유촌동 석불.운천사 석불

임병기(선과) 2009. 8. 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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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정확하면 네비양 활약이 돗 보이는 지역이 도심이다. 답사 매니아들은 외곽지에서 무지막지하게 산길로 고고를 외치면서 인도하는 그녀 때문에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겠지요. 일사천리로 유천동 동사무소(왜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꿨는지 궁금타!)에 도착하여 마당에서 반기는 부처님을 뵈었다.

 

 

쌍촌동 운천사에 있던 것으로 193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극락면이었던 유촌동은 사람의 왕래가 많고 주민들도 많이 살았는데 마땅히 소원을 빌 만한 대상이 없어 운천사에 있던 불상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기자신앙을 믿는 민초들에게 얼굴 대부분을 내어주어 윤곽이 명확하지 않다. 민머리에 육계가 높고 삼도가 보인다. 당당한 어깨에 비해 팔은 짧고 허리는 가늘다. 수인은 시무외인,여원인 도는, 미타인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 전기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운천사 대웅전

 

운천사. 태고종 사찰이었다. 일요일 오전에 절집이 비어있다니. 객으로 오신 분의 이야기로는 스님이 상주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국가 문화재가 있는 절집 대웅전 속에 석불을 모셔두고 문을 잠그면 어디 봉안이라고 하겠나? 그건 감금이 분명하다! 멀리서 찾아오는 답사객은 관심도 없다는 발상이며 국가 문화재를 개인 소유물로 착각하는 소치다.

 

인연이 아니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내뒤에 찾아오는 순례객들도 그런 참담한 기분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내뱉는 넋두리로 들어주길 바란다. 모르긴 해도 광주 서구청과 사전 조율 없이는 운천사 만을 위한 마애불이 될 공산이 크다.

 

사진출처...문화재청

 

직접 뵙지 못해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오니 우리님들은 사전에 준비하여 악착스럽게 만나고 오길 바란다. 아울러 운천사 대웅전이 항상 열려 있도록 작은 노력을 다해주면 좋겠다.

 

"기록에 의하면 정토사(淨土寺) 또는 극락암(極樂庵)이라고 하였다. 언제부터 운천사라고 하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토사라고 하였던 기록에는 원효대사가 무등산 원효사에 계시던 어느 날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함을 보고 제자 보광화상(保光和尙)을 현지에 보냈더니 뜻밖에 큰 바위에서 빛이 솟아 나오므로 그곳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었다"는 달빛에 젖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자연암벽< 自然岩壁 >을 다듬어 불상을 양각< 陽刻 >하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전각< 殿閣 >을 이루고 있는 일종의 석굴불상< 石窟佛像 >이다. 넓적한 얼굴에 긴 눈, 우뚝 솟은 코와 두터운 입술, 길게 늘어진 귀 등 매우 근엄한 얼굴을 이루고 있다. 또한 굵은 목, 떡 벌어진 어깨,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자세 등은 안정감 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을 해남< 海南 > 대흥사< 大興寺 > 북미륵암< 北彌勒庵 > 마애여래좌상<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48호)과 같은 고려시대< 高麗時代 > 마애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팔이 유난히 길고 손발의 표현 역시 커서 딱딱하고 어색한 면도 보이고 있으며 두 손은 배 위에서 모아 약호< 藥壺 >를 잡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근엄하고 경직된 얼굴과 당당하고 딱딱한 신체, 우견편단< 右肩偏袒 >을 한 옷주름의 형식적이고 이완된 처리, 손가락 등의 어색한 모습 등 고려시대 마애불양식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는 귀중한 불상이다."

 

20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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