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광주...동오층탑.서오층탑

임병기(선과) 2009. 8. 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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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주변에서부터 아침 밥 먹을 식당을 찾았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일요일 이른 시간에 오픈한 식당이 있겠는가? 네비양의 도움이 아니라도 동승한 탑돌이는 위치를 꿰차고 있다. 오층탑은 말쑥한 도회풍 몸매의 세련된 여인이었다. 

 

통일신라 하대 왕권의 통치력이 누수되는 시점에 서라벌에서 변방인 여기에 거대 석탑을 세울 집단은 누구 였을까? 지방 호족의 도움과 지원 없이는 불가한 일이었을텐데. 백주사.백주사지(광주 광역시청 자료에는 백천사라고 했다. 州와 川이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적은 남아 있지 않다. 비록 거리감이 있지만 동서로 조성되어  비보탑으로도 추측되지만 정설은 아니다. 무진주를 근거지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떠오르지만 더이상의 언급은 당랑거철이리라.

 

 

2기단, 몇개 판석으로 구성된 상하기단에는 우주와, 탱주가 2개 분명하고 각층 탑신면에도 우주가 정연하다. 옥개석 추녀 반전은 부드럽다. 옥개과 몸돌은 각각의 부재로 보이며,  상륜부 파손이 심한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지붕돌 받침은 1층은 5단, 2~4층은 4단이다. 1955년 해체 수리시 4층 옥개석 윗면에서 사리장치 발견되었다고 한다.

 

백수사터에는 도심불교 사찰인 연화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절집 정원에 묻혀 있는 규암당 부도. 백주사가 조선시대까지 범종 소리 빛고을에 울려 법음을 전했다는 단초가 될까?

 

 

호남 문화원에서는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스님이  9세부터 5년간 머물렀던 광주 무량사를 이 곳 동오층 인근연화사 부근이라는 사료를 찾았다고 한다.  그기념으로 금년 봄 일연선사 추모제를 올렸다고 한다. 백주사와 무량사의 존재는 알 수 없지만 작은 단초로도 지방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무척 고무적으로 보인다.

 

 

광주 서오층탑.광주공원의 사적이 전해오지 않은 성거사에 있는 석탑이다.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聖居山)이라 불렀는데, 산세가 거북이 형상으로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는 거북이  떠나지 못 하도록 목덜미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 부근에는 5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경북 청도의 떡절에도 전해오는 이야기와 비슷한 고려전기에 세운 비보탑이다.

 

현재도 이곳은 거북이 龜구동이라고 한다. 우리 국토의 혈을 단절하기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성거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1940년 일인들이 정상에 신사를 짓기 위해 거북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단층기단, 1층 몸돌을 2단으로 구성한 예는 영남지방에서는 드문데 호남에서는 심심찮게 나타나는 고려 유형이다. 비례도 맞아 상승감이 있으면서 안정감도 잃지 않았다. 옥개받침은 4단, 모서리에 반전도 보이고 우주를 새겼다. 초층과 3층 몸돌에는 보수한 부재이다.

 

기단 갑석에는 부연이 보이고 초층 몸돌 받침은 2단으로 별석을 끼워 넣었다. 상륜은 멸실되었다. 1961년 해체 보수할 때 2층탑신 상면에서 사리공(舍利孔)이 발견되고 그 안에서 사리 장엄구가 나왔다고 한다.

 

 

서오층탑 부근 광주공원 주변에는 식당이 즐비했지만 오늘은 휴뮤일이다. 이른 시간 공원에는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모여 한담을 즐기고 계셨고 한편에서는 무료 급식차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 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는 오층탑 덕분에 광주 발전은 물론 시민의 수명과 행복 지수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거북이는 길상과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동물이기 때문이다.

 

20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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