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상주시

상주...유곡리 석탑. 무량리 귀부

임병기(선과) 2009. 1. 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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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낙동면 유곡리. 참 여러번 스쳐 갔건만 탑의 존재를 몰랐었다. 고교시절부터 절친한 동기의 고향인 낙동강 건너 의성군 단밀면에서 붕어찜를 즐기기도 했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위하여야 하는가? 말과 글로는 이름없는 우리 문화유산을 즐기자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무관심 아니 화려함만 추구하는 표리부동한 성정이 탄로가 된 듯하여 스스로 부끄럽다.

 

유곡리 라는 지명의 유래가 궁금하였다.  유천(柳村·柳川)마을과 매곡(梅谷)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강줄기를 따라 매화향기 가득하고 버드나무 춤추는 우리네 고향 마을이 절로 떠오른다. 유곡리 탑이 위치한 동네는 관터마을로 용포 오리원에 관아가 있어 관인 들의 행차가 끊이지 않았다 하여 관터로 불리었다 한다. 문득 사찰의 폐사와 관아가 무관치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나만의 착각일까?


 

글을 준비하는 중에 최근 사진과 현재 사진이 너무 달라 비교하였더니 복원 당시에는 찰주가 있었는데 현재는 찰주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탑에 비해 복원한 상륜부의 상대적 화려함과 크기 때문에 탑과 부조화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찰주는 제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옛부재와 신규 부재의 활용도 조화롭게 보여 점수를 주고 높은 싶을만큼 복원이 잘 되었다고 본다.

 

석탑은 2기단이며 3층 몸돌 위와 지대석, 하대석은 복원하였다. 하기단 면석에는 안상속에 귀꽃이 피어 있다. 상기단에 1개 탱주, 초층 몸돌의 문비가 모각되었고, 4개의 옥개석 받침이 있다. 1988년도까지 현재의 위치에서 북으로 약 5m 떨어진 미나리 밭에 위치하였고 탑은 하부에서 2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었으며 그 상부는 석등대석과 앙화석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하기단 면석에 핀 안상속의 귀꽃

 

 

바닥을 자갈로 깔거나 흙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독한 감기.쌀쌀한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긴 시간 머물지 못함이 아쉬웠다. 상주시에서도 지정문화재 등록 준비를 하여도 좋을 고려초의 탑으로 보인다.

 

 

양진당. 오작당. 의암고택. 무량동 귀부.상주시내로 들어가는 길. 답사를 즐기는 사람이면 이 길위에 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무량리 귀부를 만나기 위해 행정구역상 거동리로 표기되어 거동리 느티나무 아래 쉬고 있는 촌부들에게 여쭈었지만 행방을 몰라 만나지 못했었다.

 

인연은 이렇게 우연하게 맺어지는 모양이다. 이번 답사 동선에 포함하지 않았는데 동행한 님들 덕분에 쉽게 뵈었다. 본래위치는 상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인 무양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옛 지명을 따서 문화재의 이름을 이와 같이 부르고 있다고 한다.

 

 

다소곳하며 선하다 못해 겁없는 눈동자를 지니고, 목을 움추린 거북은 기가 죽은 느낌인데, 많은 사람들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라 표현했다.(나도 착하게 살아야겠다 선하게 표현하고...) 경주 서악리의 자신에 넘치고 당당한 초기 귀부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설마 신도비와 공적비 비신을 박살내지는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고승의 탑비? 

"각 부분의 조각솜씨나 양식들이 조선 태조의 헌릉비나, 영암 도갑사의 도선국사비, 삼전도비 등의 수법을 닮아 있어 조선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기술되어있다.

 

 

어디로 향하고 싶을까?

 

눈앞에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 행렬로 인해 안태 고향은 멀기만 하다.

 

200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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