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스크랩] 서라벌...남산 칠불암 마애불

임병기(선과) 2008. 12. 2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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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지기들과 동동주 두어 순배 걸치고 나홀로 칠불암으로 향한다. 숨이 가파온다. 벌써 이래서는 안돼지. 남산리 동서삼층탑에서 마음을 다잡고 경보 수준으로 길을 재촉한다. 30분이면 될려나?

 

토욜 오후 산길은 한적하다. 미쳐 생수 한 통 챙겨오지 못 했지만  콧노래가 나온다. 내가 좋아서 가는 길 즐겁게 가야지. 암!!

 

 

칠불암 초입 산죽 터널. 동남산 감실 부처님. 화엄사 구층암. 해인사 백련암. 남해 금산 정상에도 산죽이 자생한다. 결국 예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자취이다. 피곤한 객에게는 목표지점이 가까워 짐을 알려주는 반가운 풍경이다.

 

 

칠불암 인법당 과 산신각.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객에게 보살님이 내어 놓은 오이와 사탕이 감로수보다 더 고맙다. 잠시 후 작은 배례단에 예를 올리고 좌정한다. 황법련화 보살님이 문득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쯤 이라고 한다. 아래 남산리 마을 에 ‘황(黃) 씨’라는 할머니가 살았다.  어느 봄날, 나물을 캐러 봉화골짜기를 따라 한참이나 올라가다가, 산 능선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그 때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잡목과 칡넝쿨 에 가려진 돌 벽 위에 붙어있는 불상의 머리 일부를 어렴풋이 본 것이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짙게 욱어진 수풀을 헤쳐 보니, 거기에 부처님이 돌에 박혀 웃음 띤 얼굴로 자기를 인자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몇 번이고 절하고 황급히 동네로 내려와,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낫이랑 연장을 갖고 다시 올라갔다.

 

불상근처를 제초, 벌목하고 주변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후 아들과 함께 바로 옆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석불을 닦고 손질하며 정성을 다하여 칠불을 모셨다. 물론 당시 관계 관청에도 신고하여 그 때부터 ‘칠불암’이라 불려졌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로 명명되고,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었다가 해방이후 재분류되어, 현재는 보물 제200호로 되어있다."...신라 문화원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삼존불상과 전면 바위의 사방불 등 일곱 분 불상이 모셔져 칠불암으로 불리우며 여러 흔적으로 미루어 석굴사원으로도 추정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통일신라 호국불교사상.즉.  불타의 원력으로 동해로 침입하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절을 지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불상이 향하는 방향도 동쪽으로 조성되었다고 믿고 있다.

 

 

고부조의 삼존불상. 본존불은 소발, 큰 육계 풍만한 얼굴, 쌍꺼풀진 눈, 양감이 넘치는 코, 귀는 어깨까지 닿았다. 삼도는 보이지 않고 가슴은 당당하다. 항마촉지의 수인,  우견편단의 법의, 상체 옷주름은  계단식 주름이며, 하체의 옷주름은 큼직한 선으로 처리되었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의 2중 연화좌 이다. 

 

본존불은 협시보살로 미루어 지금까지 나는 아미타여래로 생각했는데 석가여래로 보는 자료도 여럿 보인다.

 

 "석가여래는 비로자나여래의 분신으로서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들의 생명은 불성을 지닌 귀한 생명임을 가르쳐 주신 부처님이다. 삼존불 앞에 있는 사방불은 그 자체가 眞如의 부처님이신 비로자나여래시다. 그 때문에 여래의 빛으로 이루어지는 사방불 정토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육면 입방체의 바위, 그 속에 머물러 계시는 진여의 부처님 비로자나여래의 분신인 석가 부처님은 우리 인간들을 제도하신 부처님이시기에 그렇게 크고 장엄하게 삼존으로 조성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불국사에서도 비로전은 그렇게 크지 않고 석가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이 크게 서 있는 것이다.

 

이 삼존불이 아미타삼존이시라면 앞에 있는 사방불 서면에 새겨진 아미타여래가 마주보고 앉아 계시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다음(출처를 잊었다)

 

"우측 보살은 연화대좌위에 서서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집어 가슴 앞에 올려들고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는 삼면두식(三面頭飾-머리띠의 앞과 양옆에 장식을 붙인 보살들이 쓰는 관)으로 장식을 하고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승기지(僧祇支-보살들이나 천인들이 가슴을 가리는 긴 헝겊)가 가슴을 감싸고 그 남은 자락이 수직으로 물결을 그리며 흘러 내렸다. 두 어깨에는 보발이 덮여 있고 목에는 간단한 목걸이가 걸려 있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주름 위를 과판이 달린 띠로써 꼭 동여매고 흘러내린 치마 자락은 발등을 덮고 양 옆으로 퍼지면서 잘다랗게 주름잡아 곱게 처리되었다. 넓은 천의는 어깨에 걸쳐 두 팔을 감싸며 양 옆으로 흘러 내렸고 팔목에는 팔찌가 장식되었다. 머리 뒤에는 크게 보주형 두광이 새겨져 있어 연꽃대좌와 함께 보살의 위력을 돋보이게 하였다."
 

 

"좌측 보살은 꽃을 들고 있고 오른쪽 보살은 정병을 들고 있으며 모두 본존쪽을 향해 몸을 약간 비틀고 있다. 이 보살도 큰 복련꽃 대좌 위에 서서 오른손에는 보상연화(寶相蓮華)를 들어 가슴 앞에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떨어뜨린 채 천의자락을 살포시 들고 있다. 흙탕물에서도 때를 타지 않는 연꽃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제도하겠다는 이 보살이 중생들께 약속하는 진한 모습이 연꽃을 들고 있는 손가짐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살결이 풍만한 얼굴을 본존 쪽으로 반쯤 돌리고 있는데 그 표정은 더욱 귀여운 데가 있다. 머리에는 삼면두식(三面頭飾)으로 된 관을 썼고 두 어깨는 보발로 덮여 있다.


목에는 간단한 목걸이가 걸려있고 부챗살처럼 펴진 승기지(僧祇支)가 비스듬히 가슴을 감싸고 왼쪽 어깨에 걸쳐져 있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주름 위를 끈으로 동여 매었는데, 끈은 배 앞에서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나머지 자락을 밑으로 드리우고 있다. 어깨에 걸친 천의가 두 팔을 감싸고 아래로 흘러내린 모습이나 발등을 덮고 있는 옷자락이 양옆으로 퍼지면서 자잘하게 주름잡고 있는 모습들은 오른쪽 보살상과 같다. 또 팔목에 간단한 팔찌가 끼어져 있는 것이나 머리 뒤에 무늬없는 큰 보주형 두광이 배치된 것도 우측 보살상과 같은 모습이다."

 

 

남면 석가여래?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았으며 수인은 설법인(?)이다. 돋을 새김된 얼굴은 복스럽고 눈은 약간 치켜올라갔다.  

 

 

가장 좁은 북면 바위의 미륵불(?).  이중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설법인상으로 짚어 아래위로 들고 있다. 두광은 보주형이며,  얼굴도 작으며 키와 대좌가 부자연 스럽다.

 

삼존불을 바라보는 서면 아미타불. 몸체는 돋을새김이며, 연화대좌는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출입을 통제하여 접근하여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대좌가 선각으로 표현되어 자연스럽게 앞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북쪽 불상과 아미타불 사이 암벽에 홈과  깊게 파인 면이 보인다. 석굴사원의 유구일까?

 

 

동면 약사여래불. 연꽃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계신다. 왼손에는 약함,  오른손은 설법인 수인이다.

 

 

석탑 부재

 

 

석등부재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과연 칠불암이 무엇을 지켜주었냐고?

그럼. 그대는 죽은 사람인가?

 

오늘의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2008.11.22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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