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음성군

[스크랩] 음성...마송리 장승

임병기(선과) 2008. 10. 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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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마송리 오미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변에 세워진 돌장승 3기. 군대 제식훈련도 아니건만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 의아했는데, 충북선 공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장승은 두기가 맞보고 조성되거나 사방에서 방위 수호 개념으로 모셔진다. 오미마을 제주 고씨 집안에서 숙종 39년(1713)에 무관 고증명이 지방수호의 상징으로 세곡에 세웠던 장승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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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충주 국도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장승으로 묘소앞 문인석 처럼 홀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이마에는 백호가 표현되어 미륵불 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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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장승.사모를 쓴 문관의 모습을 한 장승으로 몸통에는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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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4기의 장승인 줄 알았다. 자료에는 3기로 명기되어 오류라고 여겼는데 자세히보면 입석 같기도 하고 자연석 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그늘에 두분의 촌로에게 여쭈어도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다. 혹 사방위 수호를 위해 1기를 후대에 더 조성할려는 흔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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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같은 장승. 우리민속에서는 선돌도 장승도 그 역활이 동일하니 분명하게 구분해서 무엇하겠는가?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이라 쓰여 있고, 왼쪽에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라 쓰여 있다. 

 

조성시기와 관련 모두에 언급한 숙종39년(1713년)이 틀리다는 근거로 위의 장승에 표기된 신묘년 때문이다. 신묘년은 1711년으로 2년의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는 나처럼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면 만사형통이다. 즉 1711년에는 입석만 조성하였다가 2년후 보관을 쓴 장승  2기를 더 모셨다고 생각하면 베리 굿!! 

 

자료에는 "오미마을에서는 매년 정초에 좋은 날을 택하여 장승제를 지낸다고 한다. 각 장승마다 3명씩 9명의 제주(祭主)를 뽑는데 덕망이 높고 흉액(凶厄)이 없는 사람을 뽑는다. 일단 제주로 정해지면 그 사람은 마을의 나쁜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한다. 제물은 당일에 장승별로 준비하여 밤중에 각각 3명이 제사를 지낸다. 만일 제사 당일 마을에 흉사가 들면 제주 혼자서 제사를 지낸다."

 

할머니  두 분에게 금년에도 장승제를 모셨는데 금줄이 안보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이상한 놈 다본다는 표정으로 "금줄은 서낭당에 거는 거지. 장승한테 왜 걸어!!!"

으미 기죽어!!

 

2008.08.0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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