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익산시

[스크랩] 익산...고도리 석불

임병기(선과) 2008. 8. 4.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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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읍을 수호하는 장승처럼 보이는  2구의 석불입상이다. 고도리라는 명칭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정감있는 불상은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으며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고도는 옛수도(古都) 즉 미륵사지, 무왕과 관련된 지명은 아닐까? 석불은 대답이 없고 지친 객은 질문만 던지고 답에는 관심조차 없다. 묵고 놀면서도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은 여의도 한량들이 대정부 질문 후 답에는 관심없이 자리를 비우는 꼬락서니에 익숙해 죄의식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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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머리에 관을 착용하면 미륵불로 여기는데 고도리불상도 방형의 갓을 쓰고 있다.장방형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작게 새겨졌으며 목은 보이지 않을 만큼 생략되어 있다. 몸은 돌기둥 이며 손만 보인다. 전형적인 장승의 모습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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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고 한다. 엄격히 말하면 장승에는 남녀 구분이 없지만 남녀의 결합을 통한 다산과 풍요를 갈구하는 민초들의 바람이 그렇게 이름한 모양이다.

 

다음의 답사 여행의 길잡이의 자료를 보더라도 고도리 석불은 비보풍수 즉 고을맥이 풍수 비보책으로 조성된 장승의 성격이 짙다.

 

"넘어져 있던 것을 조선 철종 9년(1858)에 새로 부임해온 군수가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 때 씌어진 「석불중건기」 비석이 찻길 가까운 쪽에 선 석불 옆에 있다 「석불중건기」에는 "금마는 익산의  구읍자리로 동.서.북의 삼면이 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유독 남쪽만은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의 허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그마의 주산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말에는 마부가 있어야 하므로 마부로서 인석(人石)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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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석불처럼 일년에 한 번 해후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길은 만나러 가는 길이다. 

 

2008.07.0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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