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괴산군

[스크랩] 괴산...외사리 당간지주

임병기(선과) 2008. 6. 30.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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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김기응 고가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잠시 달리면 논 가운데에 서있는 당간지주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담쟁이를 두른 지주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다. 간대는 2단 원좌형으로  중앙에 돌출된 돌기로 당간을 고정시킨 것 같다.

 

당간지주를 바라보는 순간 문득 류시화의 '길 위에서의 생각'의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옥수수가 보이는 바로 논앞에서 젊은 농부내외가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였다. 논에 들어가 있는 남편과 논둑에 앉아 있는 부부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검게 거슬린 얼굴, 흙이 묻은 작업복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행복이 가득한 표정이어서 오래 당간지주를 바라보는 것이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듯해 얼른 자리를 피해주고 싶었다.

 

그들 부부에게 당간지주는 석물이 아니라 사시사철 그들과 이야기 하고 웃고 웃으며 함께 숙식하는 친구이고 동거인이며 수호신이 분명하다. 오래전 아주아주 오래전 그들의 할아버지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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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리 당간지주 주변에 있었던 부도와 관련 신문기사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절이 인근에 있었음을 추측할수 있다. 또한 외사리 사지에서 수습된 기와편들이 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오지인 외사리는 포교와 전법의 대승불교 보다는 아마도 선종사찰이 아니었을까? 아래글은 제자리(이순우)님의 카페에서 가져왔다.

 

<조선과 건축> 1935년 8월호, "사리탑(舍利塔) 일시 대기"

 

신라시대의 사리탑이 자칫 해외로 팔려나가려 했던 것이 발견되어, 마침내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최초의 발동을 보아, 중지되어진 사리탑(舍利塔)은 높이 1장2척, 웅대하고 우아한 신라시대의 유수한 석탑으로, 최초 경성 남대문통의 고물상 배성관(裵聖寬)씨가 6월 27, 8일경 경기도 용인군 사는 김성배(金聖培)씨라 하는 주소부정(住所不定)의 남자의 중개로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349번지 무직 김준형(金俊亨)에게서 350원에 매수하였다가 다시 배씨는 이것을 수일 전에 경성부 황금정 다케우치(竹內)씨에게 2천 7백 원에 전매(轉賣)했던 것인데 다케우치씨는 머지않아 내지(內地) 또는 지나방면(支那方面)에 이송하려고 각방면에 교섭중이었다.

 

이를 알게 된 본부(本府) 사회과에서는 곧장 경기, 충북의 양 경찰부(警察部)와 연락을 취하여 이 탑의 정확한 원소재지 및 그 소유권과 더불어 소재지에 있어서 유적상황 및 반출의 연월일을 목하(目下) 조사중인데, 해외이송을 우려한 사회과에서는 다시 7월 6일 오전 10시경 최 사회과속(崔 社會課屬), 아리미츠(有光), 사와(澤) 양 촉탁(囑託) 등이 본정서(本町署) 니시자키 보안주임(西埼 保安主任)과 장시간에 걸쳐 타합이 이루어진 후 경찰관을 대동하여 전기 다케우치씨 댁에 가서 동탑(同塔)을 실험한 결과, 대단히 우아하고 웅대한 점과 기타의 이유로 조사의 필요가 있다고 결정, 곧장 이송중지를 명령함과 더불어 관계자 협의의 결과, 긴급한 조치를 내리기로 되어 마침내 10일 보존령(保存令)의 발동(發動)을 보았고, 동탑을 보물(寶物)로 하여 가지정(假指定)하기로 결정, 다케우치씨에게는 속달편으로써 통달하였는데, 하마터면 그 자태를 감출 뻔한 운명에 있던 유서있는 고적물(古蹟物)은 보존령에 의하여 완전히 보전되었다. 이 탑은 상당히 우수한 보물이어서 다시 조사되면, 매우 주목되어질 것이다. 본 사건을 계기로 본부(本府)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서는 보물고적의 보존상 단연 엄벌주의로 나갈 것이라 말하고 있다고.

 

아무튼 부도는 반출 위기를 넘기고 간송미술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 ...문화재청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물 제5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시대(11세기경)이며 자재는 화강암으로 부도의 높이는 3.5m이다.
 
이 부도는 본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절터 부락의 산기슭에 건립되어 있었던 것인데 일제침략기에 일본으로 탈취해 가기 위하여 인천항에서 선적하기 직전에 고(故)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선생이 수습하여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현위치에 옮겨 세웠다. 그러나 6·25전쟁 때 파손되어 또다시 각 부재가 흩어진 것을 1964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이 상·하 2돌인데, 아래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위에는 연꽃무늬를 돌린 후 8각마다 꽃조각을 돌출시켰다.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에 구름모양을 돋을새김하였고, 그 위는 각 면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배흘림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탑신은 몸돌이 가운데받침처럼 배흘림을 하고 있고, 남북면에는 문짝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그 안에 자물쇠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가 높아졌고, 각 귀퉁이마다 지나치게 커보이는 꽃장식이 솟아있다. 꼭대기에는 중간에 두 줄의 선을 돌린 둥근돌 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의 장식이 두 개 더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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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2008.06.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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