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괴산군

[스크랩] 괴산...김기응 가옥

임병기(선과) 2008. 6. 2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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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칠성면 율원리 성산마을에 위치한 김기응 고가는 일명 칠성고가로도 불리운다. 낮은 동산을 배경으로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안채는 1800년 대에 그밖에 사랑채 등은 1910년 고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김항묵이 경술국치에 분개하여 낙향하여 증축하였다고 한다.

 

대문을 통해 들어가서 주인의 허락을 받을려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마도 들에 나간 듯하여 혼자서 둘러 보던중에 연세 지긋하신 할머님이 안방에서 나오셨다. 약간 귀가 어두어 큰소리로 소통이 가능했다.

 

할머님이 "오늘 날이 궂어 집에 들어 올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어 자초지종을 여쭈었더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고 했다 초기에는 반갑게 맞이했으나 언젠가부터 집의 세간살이, 화초, 심지어는 돌까지 패가서 이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국 여러 고택 종부,종손들에게 듣는 공통적인 이야기로 우리 답사문화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편협한 사고와 개인적인 욕구는 자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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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행랑채. 광,부엌, 행랑방으로 구성되며 남자 하인이 거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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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행랑채 솟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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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마당.

 

행랑채 솟을 문을 들어서면 넓은 바깥마당이 전개된다. 좌측이 곳간채이며 마주보이는 중간행랑채 문이 가운데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처음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문인줄 알았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안채로 직접 향하는 동선을 차단하기위해 벽으로 막고 꺽어 출입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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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마당에서 바라본 사랑공간. 낮은 담으로 영역을 구획하였고 중문으로 연결하였다. 고가에서 가장 높게 위치한 것은 사대부가 바깥주인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한다. 작은 사랑, 큰사랑,누마루 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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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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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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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누마루. 일반민가에서 누마루는 흔치 않으며 누마루가 있다는 것은 사대부 집안의 상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어르신들이 거주하여 보온을 위해 비닐로 바람막이를 둘렀다. 여름날 누마루 창을 들어 올리면 후원과 전방에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올 것이다.

 

여름이 되면 걷는다고 할머님께서는 내 뒤를 계속 따라오며 설명을 해주셨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모두가 저지른 행태로 인한 현실이어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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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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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서 중간마당으로 출입하는 중간행랑채에 딸린 일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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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마당에서 여자 하인의 거처와 광 등이 배치된 중간행랑채로 들어가는 문. 위에서 언급했듯이 직접적인 시선을 차단하기위해 벽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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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행랑채 중앙 마당에서 바라본 안채로 통하는 곳간채에 딸린 문. 김기응 고가는 유난히 문이 많으며 안채로 들어 가기전에 중간마당, 중간행랑을 거치는 구조는 다른 고택에서는 보지 못했다.

 

사랑채등은 1900년대에 조성되었지만 안채는 그 이전의 건물로 남여유별이 많이 완화된 시절이었으나 안채의 폐쇄적 구조는 대원군의 쇄국정책 영향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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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마당 문에서 바라본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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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생활공간인 안채. 안채는 ㄷ자 형태이며 정면 곳간채와 더불어 보면 ㅁ자 구조이다. 좌측에 부엌을 두고 정면에 각각 2칸의 안방과 대청, 건넌방으로 배치되었으며 툇마루를 걸었다. 부엌의 규모로 미루어 이 가옥을 최초로 건립한 집안 가솔의 수와 신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외벌대이다. 외벌대는 사랑채보다 낮게 건축할려는 의미일 것이다. 방형의 주초에 방형기둥과 납도리는 여성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의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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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칸 대청. 우리 민가의 휴식과 제향 공간이다. 문을 들어 올리면 시원한 바람이 지나다녀 청량감을 더할 것이다.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청이 낮지만 햇볕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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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 놓인 손때 묻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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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종부(?)로부터 많은 집안의 숨은 내력과 정감어린 이야기를 듣고싶었지만 계속해서 "운이 좋았다.날이 궂어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아 문을 열어 놓았다"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여 더이상 머물기가 부담스러워 발길을 돌렸지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2008.06.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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