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임하리 석탑

임병기(선과) 2008. 6. 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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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리 동탑


 겨울날 안동 임하탑이 보고 접어 길을 나섰다. 다행히 추위가 한풀 꺽여 쓸쓸하지만은 않은 한가로운 여정을 즐길 수 있었다. 임하리에는 들판을 중심으로 4기의 석탑이 맞보고 조성되어 있다. 같은 사찰의 석탑으로 판단하기에는 사역이 너무 넓어 각기 다른 절 석탑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예천의 개심사지, 성주 동방사지 석탑처럼 고려시대 널리 유행한 비보목적의 탑 즉 네방위를 지키는 비보탑은 아닐까?

 

폐교된 임하 동부초교 앞 마을 논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임하의 다른 탑처럼 절이름 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3층탑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특징인 1층 몸돌 받침으로 인해 크기가 작지 않다. 동행한 광해대왕, 각시탈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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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단 갑석에는 복련을 새겼다. 한옥 기둥 주두 모양의 큼직한 몸돌 받침을 두었다.

멋을 내기 위해 고려 탑의 방형 받침을 탈피하여 아래에는 안상을 새기고 앙련에는 세월의 흔적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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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몸돌에는 문짝모양을 새겼다. 옥개석 받침은 전형에서 약화되어 4단이며의 받침을 두었는데, 몸돌에 비해 처마가 좁은 것은 전탑의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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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초교가 폐교되지 않았을 시절에는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겠지만, 지금은 어린아이 울음 그친지 오래된 한적한 시골 마을지킴이가 되어 운동장을 뛰놀던 고향 떠난 사람들 기다리고 있는 듯 목을 길게 빼고 멀리 반변천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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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리 오층탑에서 바라본 임하리 마을, 멀리 산쪽이 임하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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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쑥해보이는 오층탑은 성주 동방사지. 밀양 소태리 탑이 생각나게 한다. 신라시대 사찰 원림사 탑이라는 전설이 있으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으로 임하리 석탑 중 가장 위에 위치하고 있다. 산을 바라보는 감실의 위치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시절에는 반변천을 건너 오는 진입동선이 아니라 산을 넘어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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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탑으로는 유일하게  각층 탑신에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옥개받침은 4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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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몸돌에는  자물쇠 없이 문비만 표현하였다.

우리 민속에서 석탑을 갈아 마시면 아이를 잉태한다는 이야기는 접하지 못했지만 기자신앙의 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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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과 상승감이 조화로운 신라탑과 달리 지나치게 상승감을 강조했지만 어쩐지 멀쑥하고 싱거운 사내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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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탑 옆에는 과거 절집에 주불로 모셔 졌던 불상? 목도 잘리고 팔도 절단된 모습이다. 대좌 상대석이 있지만 대좌 중대석 위에 좌정하고 있다. 석탑 복원도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처연함이 덜어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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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앉아있는 대좌 하대석과 육각 중대석이다.

중대에는 안상을 새기고 안에는 연봉우리가 터질듯 부풀어 있다.

지금이라도 상대를 올려 대좌위에 파불을 모셨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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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리 중앙탑

 

 신라 형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탑은 고려초기가 아닐까? 2기단 삼층탑이지만 1층 옥개석과 상륜이 멸실되었다. 얼핏보아도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이렇게 복원했을까? 탑구경 한 번 하지 않은 업자의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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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복원하면서 상기단 갑석을 1층 옥개석에 올려 놓았다. 기단 갑석은 새롭게 조성하였으니, 교통사고 환자 다리뼈를 허리에 끼워 넣고 다리에는 짝퉁 뼈를 끼워 넣은 모습이다. 안동시에서는 알고는 있는지? 영국왕비가 다녀가고 국제 탈춤 축제를 개최하면 최첨단 문화자치구인가? 우리문화재의 현주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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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저런 일을 바라보며 잘못되었다고 소리쳤을 석탑도 이제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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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리 12지상탑

 

임하마을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원래는 3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2층이상은 멸실되었다.1층에 비해 2층 몸돌 체감이 급격하다.

상기단 갑석도 무너진 기존 갑석을 활용하지 못한 잘못된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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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옆 논둑에는 기단 갑석과 석등 간주석이 이렇게 아픔을 간직한 채 누어 있다.

무너진 것도 서러운데 제자리를 빼앗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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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히 조성한 기단 갑석이다. 예산 낭비가 눈에 보인다.

만시지탄의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갑석은 제위치로, 석등도 간주석을 활용하여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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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단의 십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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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단 면석에는 팔부신상을 새겨 물샐틈 없는 경비방을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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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단에 12지상과  상기단 8부신상을 동시에 장식한  석탑은 고려시대 탑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탑인 옆고을 예천 개심사지 석탑에도 보이는 특징이다. 개심사지 석탑도 예천의 기를 보호할려는 비보탑으로 알려져 있으니 임하리 4기의 탑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2008.01.2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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