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조탑동,신세동,동부동 전탑

임병기(선과) 2008. 6. 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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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초심자들도 필수 동선이 안동에 위치한 전탑 기행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자료, 글,사진에 익숙한 전탑이기에 조심스럽지만 안동지역의 탑순례기를 기록할 목적으로 올리며 사진은 옛적에 찍은 것도 있다. 안동 답사 동선은 군위,의성을 거쳐 국도가 제격이지만 조탑동 전탑은 고속도로로 진입할 경우 안동 나들목에서 만날 수 있다.

 

조탑동 전탑. 대부분 절이 있었던 자리에는 절골. 탑골,부처골의 지명이 있지만 조탑동(造塔)은 탑보다 먼저 또는 동시대에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조탑동이 세간에 널리 회자된 것은 탑이 아니라  조탑동 교회의 종지기였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천진난만(?)한 삶과 '몽실언니'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님과의 우정과 주고 많은 편지로 많은이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그가 작년에 고인이 된 후 조탑동 주민들은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의 장례에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눈물을 펑펑 쏟는 것에 놀랐고, 불쌍한 노인으로 알았는데 년 간 수 천만원의 인세 수입에  놀랐고,그런 재산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모은 10 억원과 앞으로 생길 수입을 굶주리는 남북한 어린이를 위하여 써 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은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언장을 옮겨온다.

 

내가 죽은 뒤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 하다). 3. 박연철 변호사(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위의 세 사람이 나의 모든 저작물을 함께 관리하여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온 인세수입은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하는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 팀에 맡기고 가끔 확인하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걸로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런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이 같이 반 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내가 화를 잘 내는 것을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 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25살 때 22 혹은 23살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하지만 다시 태어났을 때도 얼간이 폭군 지도자와 전쟁이 있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작성자 :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6-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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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탑동 전탑

 

화강암 석탑이 본류였던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탑으로  토축기단에 초층 몸돌이 화강석이며 윗층은 벽돌로쌓은 특이한 전탑이다. 아직도 안동을 비롯 경북북부에서 전탑이 널리 분포한 신뢰할 학설이  없어 온갖 추측이 난무한 전탑이지만 어떤이는 고집스런 지역민의 성향으로 해석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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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탑의 특징인 감실과 인왕상이 있으며, 인왕상은 아금강과 훔금강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지킴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혹 동네아이들에게 토축기단위로  올라와서 어깨동무하며 놀자고 꼬드기는 표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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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다른 전탑과 달리 옥개석에 기와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차례의 보수 때문에 원형을 많이 잃었다고 알려져 있어 그 와중에 기와도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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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동 전탑

 

우리나라의 여러 문화재 표기 오류처럼 신세동 전탑도 법흥동 전탑이 옳은 명칭이라고 한다. 동명에서 불교 색채가 뚜렷하듯이 통일 신라시대에 법흥사 절터 자리였으나 조선조  억불정책의 희생양으로 절집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답사 매니아들에게 동정을 가장 많이 받는 탑으로 중앙선 철길로 인해 봉화에서 흘러오는 낙동강의 수려한 풍광이 가로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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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떡칠한 단층 기단에는 팔부중상,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탑으로 알려져 있다. 1층 몸돌에 감실이 있는 한 면에 계단을 설치하였고.각층 지붕에는 목탑에서 전탑으로 흘러가는탑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와를  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수많은 핍박과 굴욕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년을 버텨온 탑과 장인을 모욕하는 말이겠지만, 열차의 진동으로 인해 허물어질듯한 우려도 지울 수 없으니 특단의 점검과 기단부 시멘트 제거와 보완책이 시급하다. 국립박물관장을 문화재청 산하로 흡수통합한다는 대통령 인수위의 안목으로 봐서는 이번 정권에서도 문화재 정책은 뒷전일테니 걱정스럽다. 혹 대운하  루트에 속한다면 옮겨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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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동 전탑 앞. 가을날 들렸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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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동 전탑

 

나는 아주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다. 조부님과 선친의 살아 생전에 일화를 보면 틀림없이 집안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대구에서 고교를 다녔지만 방학이면 조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지낸 탓에 여름방학에는 동무들은 수박,참외서리를 했지만 난 늘 방관자였다, 물론 먹을 때는 적극적(?) 참여를 했다 ㅎㅎ. 겨울 방학 때는 닭서리를 하러 갔지만 나의 성격을 아는 친구들의 배려(?)로 동네 입구에서 망을 보는 곁다리 였다. 울퉁불퉁 비포장 황톳길 겨울 야밤에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었지만 혹 화물차의 불빛이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망지기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머리를 덤불속에 쳐박은 꿩처럼 도랑에 머리를 쳐박기 급급했다.

 

그런 탓에 안동 역전의 동부동 전탑 답사 때마다 전탑을 바라보는 설레임보다는 잠시만 보면 되는데 주차장 관리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무료로 차를 파킹할까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래서 내린 결론 말없이 차를 파킹 한 후 나올 때 500원를 지불하고 있다. 그건 혼자만의 불문율인데 아직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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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법림사의 전탑으로 추정한다.『영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너지고 멸실되어 5층탑으로 복원 된 듯하다 또한 탑 상륜에는 칠곡 송림사 전탑 상륜부 처럼 금동제 상륜부가 있었으나 신세동의 전탑 상륜부와 함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탈취해갔다고 전해진다. 목탑의 형식인 지붕돌의 기와가 보이며 전탑의 특징인 1층 감실좌우의 인왕상이 동부동 전탑에는 2층에 새겨져 있어 본디의 모습인지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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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돌마다 화강암 감실이 있는 것도 다른 전탑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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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에는 복발이 보이며 옥개석에는 지붕을 이었다. 다른 전탑에 비해 처마가 깊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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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동 당간지주. 전탑과 같은 절집 당간지주.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동부동 전탑,운흥동 당간지주로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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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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